꼬영이 18

어느 날, <캐스트 어웨이>가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장마가 끝난 7월의 어느 날, 만성피로를 어깨에 지고 출근을 하기 위해 집 밖으로 힘겨운 걸음을 떼었습니다.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 창에 웬 수척한 아저씨 한 명이 비치더군요. “나 아직도 술집에서 민증 검사 받잖아”라는 말을 늘 자랑스레 꺼낼 정도로 동안을 자부했던 저였기에 그 비주얼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충격을 받은 상태로 들어선 회사에선 아침부터 상사에게 이리 치이고, 실수를 한 후배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또 한 번 치이고, 그러다보니 놓친 내 업무를 하느라 점심도 놓치고 이래저래 점점 스트레스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에 이르렀지요. 그래서 나지막이 중얼거렸습니다. “내일은 연차 써야겠다.. 씨X” 그러면서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제 모습에 더욱 열이 받더군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무도 ..

꼬영이 2022.07.30

공포영화가 사라진 여름... 그 시절의 <여고괴담>을 기억하십니까?

편집자주: 이 영화의 내용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의 나이는???? 90년대 대한민국을 공포에 빠뜨렸던 전설의 영화 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이 영화가 지닌 의미를 재조명해 봅니다.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매년 여름이면 팔딱이는 제철 ‘공포영화’가 극장에 비명을 가득 채우고, TV에선 창백한 귀신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와 이불을 뒤집어쓴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 모으던 그런 때가.. 정말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인기 많던 납량특집, 공포영화가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 정도면 멸종위기종으로 정해서 매년 여름 한 편씩 개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특히 그 상황은 올해 더 심각한데요. 지난 13일 개봉한 서영희 배우 주연의 을 제외하고는 국산 공포영화는 개봉 소식이..

꼬영이 2022.07.17

"탐 크루즈, 날 가져요..ㅠㅠ" 36년의 간극을 채우는 여전함

여러분은 어린 시절 꿈이 무엇이었나요? 저는 15살까지 아주 명확한 꿈이 있었습니다. 톰 크루즈. 네, 제 꿈은 톰 크루즈였습니다. 물론 아주 당연하게도 2차 성징의 풍파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그 꿈은 접고 말았지만요.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가 주인공을 맡았던 영화를 보고 나면 언제나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를 보고 난 뒤로는 뭔지도 모르는 에이전트가 되고 싶었고, 을 본 후엔 양아치(?)가, 을 본 후엔 스파이가!(는 처음부터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것이기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린 제 마음을 가장 강하게 흔들었던 영화가 바로 인데요. 아주 지 맘대로 행동하지만, 아~~~~주 뛰어난 비행 능력 덕분에 미워할 수 없는 그 모습이 딱 제 롤모델이 되기에 적합했더랬죠. 거기에 내면에 숨..

꼬영이 2022.06.25

완빤치맨 마동석, 내가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

지난 토요일 오후 7시, 하루 종일 게임에 몰두하다가 다소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진라면 순한맛 한 봉지를 끓이려 냄비에 물을 올렸습니다. 역시나 방에서 뒹굴거리던 서른네 살 먹은 누나가 슬그머니 나오더니 “나 다이어트 하는 거 알면서 이 시간에 라면을 끓인다고?”라며 타박을 하더군요. 제겐 꽤나 익숙한 상황. 망설이지 않고 물었습니다. “지금 얘기해, 한 입만 달라고 하면 진짜 때릴 거야.” “됐어 안 먹어. 냄새나 안 나게 창문 잘 열고 먹어.” 5분 후, 보글보글 맛있게 끓은 라면을 식탁에 내려두고, 냉장고에 파김치가 떨어졌길래 김치냉장고에서 꺼내오려 잠시 자리를 비웠다오던 찰나. 식탁에 거먼 형태가 제 라면을 한 젓가락 먹고 있었습니다.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더군요. 왼손엔 파김치 통을..

꼬영이 2022.06.05

어느 샌가 사람들은 날 어른이라 부른다. 난 아직 어린이인데.. <마션>을 보고서

요즘 바깥에는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가득합니다. 미세먼지도 없고요(꽃가루는 좀 심한 것 같긴 합니다). 지난 주말, 날씨가 좋아서 오랜만에 친구와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캐치볼을 하고 놀았습니다. 운동장에는 아빠와 함께 캐치볼을 하고 노는 어린 아이도 있더군요. 한 30분 정도 공을 던지고 놀았을까요. 오랜만에 하는 캐치볼에 어깨가 아팠는지 바닥으로 패대기를 치는 어이없는 공을 날리고 말았습니다. 민망함에 머쓱하게 공을 주우러 가는데, 옆에서 공을 던지던 아이가 “어른이 왜 이렇게 못해요?”라고 물어보더군요. 이 녀석이... 딱밤이라도 때려줄까 마음을 먹던 순간, 아이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저씨한테 무슨 말이야. 죄송하다고 해!” 우울해졌습니다. 아직 마음은 어린이인데, 언제 이렇게 커버려서 ..

꼬영이 2022.05.14

어쩌면 개같은 삶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모레스 페로스>

때는 2019년 초,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집에서 뒹굴 거리던 석 달간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재취업을 준비 중입니다” 했지만, 사실 나이브하게 본다면 그냥 ‘백수’였었지요. 모두 그런 시기가 한 번 쯤은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유로운 척은 해보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안감을 숨길 수 없는 시간. 친구/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포자기 할 수밖에 없었던 무의미한 시기. 석 달 동안 외출이라곤 라면 사러 편의점에 가는 것 밖에 하지 않았던 그 시기.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이른 오후에 잠에서 깨 라면 한 그릇을 먹고서, TV 예능(강호동씨가 나오던 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는데, 안방에서 강아지 ‘감자’(갈색 푸들 / 중성화 完 / 당시 5살)가..

꼬영이 2022.05.01

흐드러진 벚꽃을 바라보다. “꽃은 언제고 다시 피어난다 <4월 이야기>”

4월, 청춘의 계절이지요. 30대에 들어선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 마음만은 열여덟 살인지라 이 시즌이 되면 괜스레 마음이 두근두근 뛰곤 합니다. 2022.04.09 토요일 오전, 꼬박 1년 만에 다시 핀 벚꽃이 반가워서 신발끈을 다시 묶고 집밖에 나설 준비를 하던 참이었습니다. 뒤편에 인기척이 느껴져서 돌아보았는데, 꽃이 잔뜩 그려진 하늘하늘한 옷에, 얼굴엔 구찌 선글라스를 낀 어머니도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꽃구경을 간다고 하시더군요. 정확히 내일 모레(농담이 아니라, 정말 4월 12일에) 환갑이 되시는 어머니의 낯선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습니다. “엄마, 이게 무슨 일이야. 아직도 20대인 줄 알어?” “오랜만에 봄이잖아~” 그리고서 나가는 길에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는 길..

꼬영이 2022.04.15

어느 날, 옷장을 정리하다. “보물과 그딴 것의 사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느지막이 일어나 소파에 앉아 차가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기던 주말 오전. 문득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따가워 ‘이제 옷장 정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옷걸이에 걸린 두툼한 외투를 집어 바닥에 던져두고, 옷장 깊숙한 곳에 익어가던 봄옷을 꺼내 보았지요. H&M, 에잇세컨즈, 유니클로 등등 꼬박 반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SPA 브랜드 옷들이 괜스레 반가운 것도 잠시, 지난 계절 동안 켜켜이 쌓이고만 묵은내에 고민이 불쑥 들어옵니다. 자세히 보니 색도 조금은 바랜 것 같고 유행과는 너무 동떨어진 듯한 디자인에, 입고 나가면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지요. ‘그냥 버릴까?’ 버릴 옷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이 옷을 입고 겪었던 추억까지 새록새록 그리..

꼬영이 2022.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