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영이

완빤치맨 마동석, 내가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

DenH 2022. 6. 5. 15:54

 

 

지난 토요일 오후 7시, 하루 종일 게임에 몰두하다가 다소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진라면 순한맛 한 봉지를 끓이려 냄비에 물을 올렸습니다. 역시나 방에서 뒹굴거리던 서른네 살 먹은 누나가 슬그머니 나오더니 “나 다이어트 하는 거 알면서 이 시간에 라면을 끓인다고?”라며 타박을 하더군요. 제겐 꽤나 익숙한 상황. 망설이지 않고 물었습니다.

 

“지금 얘기해, 한 입만 달라고 하면 진짜 때릴 거야.”

“됐어 안 먹어. 냄새나 안 나게 창문 잘 열고 먹어.”

 

5분 후, 보글보글 맛있게 끓은 라면을 식탁에 내려두고, 냉장고에 파김치가 떨어졌길래 김치냉장고에서 꺼내오려 잠시 자리를 비웠다오던 찰나. 식탁에 거먼 형태가 제 라면을 한 젓가락 먹고 있었습니다.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더군요. 왼손엔 파김치 통을 들고 오른손을 불끈 쥐었습니다. 누나(초등학교 시절 수영선수 출신, 무에타이 5년)는 그런 저를 보며 “내가 냄새 안 나게 끓이랬지?”라 말하면서 씨익 웃더군요. 그러고서 야무지게 파김치에 라면을 한입 더 먹더니 강하게 제 등짝을 한 대 치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제 극장에서 봤던 <범죄도시2> 속 극악무도한 강해상(손석구 분)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출처] <범죄도시 2> 스틸컷 / 라면을 뺏어 먹고 웃는 누나와 닮았습니다.

 

네, 그 순간만큼은 저도 마석도(마동석 분)가 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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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다보면 부당한 일을 많이 당하곤 하죠. 하지만 대개 힘없고 연약한 저희 소시민들은 분노를 삼키며 반쯤 줄어버린 라면을 먹는 게 일상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런 부당함에 의지할 곳이 없는 보편적인 우리를 위로하는 히어로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대표적인 콘텐츠가 흔히 ‘마동석 장르’라고 불리는 영화들이지요. 오늘은 제가 애정해 마다 않는 그 장르의 매력을 한 번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 위기는 우리의 몫, 너는 나를 구해줘!

 

최근에도 큰 인기를 끌었던 <닥터 스트레인지>나 <스파이더맨> 같은 히어로 무비는 보통 다섯 단계의 일정한 서사 흐름을 따라갑니다. ‘악당의 등장’ - ‘위기’ - ‘성장’ - ‘고뇌’ - ‘극복’. 원래 영화라는 것이 히어로와 빌런이 너무 한 쪽이 너무 강해져서 일방적인 싸움이 된다면 그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지요. 51:49 못해도 60:40 정도는 돼야, (결국은 히어로가 이긴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음에도) 관객은 쫄깃쫄깃함을 느끼고 ‘혹시 지는 것 아니야?’라며 몰입을 하게 되는 건 당연합니다.

 

[출처] <범죄도시 2> 스틸컷

 

그런데, ‘마동석 장르’는 이 쫄깃함을 과감하게 빼고, 그 자리에 ‘통쾌함’을 채워 넣습니다. 서사 흐름으로 살펴보면 ‘악당의 등장’ - ‘추격’ - ‘완빤치 해결’이랄까요. 돌이켜보면 마동석 배우의 출세작 중 하나였던 <이웃사람>에서도, 드라마 <나쁜녀석들>에서도, 팔씨름 장르를 그렸던 <챔피언>에서도 그는 우람한 체격과 압도적인 힘으로 나쁜놈들을 제압해 왔지요. 금번에 개봉한 <범죄도시2> 그리고 전작 <범죄도시>에서는 잔혹하고 절대 꺾이지 않을 것 같은 힘을 가진 강해상과 장첸(윤계상 분)을 상대로도 단지 ‘완빤치’로 이들에게 승리를 거둡니다.

 

 

위기는 단지 주변인들의 몫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마동석 장르’의 영화를 볼 때마다 주인공이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곤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또는 일상생활을 살아가며 겪곤 하는 무수한 힘듦이 오버랩되기 때문이겠지요. 카메라의 눈을 통해 그 위기를 체감하며 떠오르는 기대감은 ‘아... 동석이 형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데...’ ‘빨리 나타나서 완빤치로 강해상을 혼쭐 내줘야 하는데...’라는 쪽으로 귀결됩니다.

 

[출처] <범죄도시 2> 스틸컷 / "쇼타임이다 이 녀석아!ㅋㅋㅋㅋㅋㅋ"

 

이번 <범죄도시2>가 유독 더 재미있게 다가온 건 아주 개연성 있게 마석도를 피해가는 모습에서 여러차례 아쉬움을 주었기 때문인데요. 그 미꾸라지 같은 술래잡기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 다다라서 더 큰 통쾌함을 주지요. 먼길을 돌고 돌아 강해상과 마석도이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머릿속은 한 가지 울림이 퍼집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쇼타임이다 이 자식아!’ 절대 그가 패배할 것이라고는 일절 생각지 않습니다. 이 생각이 아마 마동석 장르의 진면목이 아닐까요. 내가 힘들 때, 어디선가 나타나 모든 걸 해결해주는 히어로. 지친 일상에서 우리가 기다리는 그 히어로를 영화 속에서 100% 표현해주는 것 같습니다.

 

 

▶ 강건한 신체에 의외의 귀여움, 허술함이 주는 실존감

 

“저는 병아리가 무섭습니다. 조금만 힘을 줘도 터질 것 같거든요.” 과거 마동석 배우가 했던 이 멘트가 그의 매력을 가장 잘 상징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비현실적인 몸매를 가지고도, 이따금씩 내뱉는 한 마디의 허당끼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를 더 밀접하게 느끼게끔 유도 합니다.

 

사실 보통의 영화 속 히어로들은 ‘슈퍼스타’ 같은 인상이 강합니다. 인간성이 드러나긴 하지만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존재로서의 선이 확실하고, 재밌게 즐긴 후 영화관 밖에 나서는 순간 관객들은 다시금 우울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일순간의 즐거움이랄까요.

 

[출처] <시동> 스틸컷

 

하지만 ‘마동석 장르’ 속의 주인공은 극장 밖에 나서는 관객들에게 조차 현실에서도 그와 같은 히어로를 기다리게 만듭니다. 예컨대 아직도 회자되는 <베테랑>에서 “어~ 나 여기 아트박스 사장인데”라는 대사나 <시동>에서 트와이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던 모습에서, ‘혹시 아트박스에 가면 저런 사장님이 있진 않을까?’ 혹은 ‘트와이스 콘서트에 가면 저런 사람이 있으려나?’ 싶은 생각을 유도하는 것이죠.

 

 

<범죄도시2>에서도 그의 허당 같은 모습이 현실감을 더합니다. “누가 5야?”라던지, “내리고 싶으면 벨 눌러~”, “이거 손주 갖다 주세요” 이런 대사들은 사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허당의 면모이지요. 이 영화를 즐긴 관객들은 앞으로 힘든 일상을 살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부저를 보면서, 빨간 경광봉을 보면서 나를 구원해줄 히어로를 기다리게 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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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