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영이

공포영화가 사라진 여름... 그 시절의 <여고괴담>을 기억하십니까?

DenH 2022. 7. 17. 18:13

편집자주: 이 영화의 내용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의 나이는???? 90년대 대한민국을 공포에 빠뜨렸던 전설의 영화 <여고괴담>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이 영화가 지닌 의미를 재조명해 봅니다.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매년 여름이면 팔딱이는 제철 ‘공포영화’가 극장에 비명을 가득 채우고, TV에선 창백한 귀신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와 이불을 뒤집어쓴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 모으던 그런 때가.. 정말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인기 많던 납량특집, 공포영화가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 정도면 멸종위기종으로 정해서 매년 여름 한 편씩 개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특히 그 상황은 올해 더 심각한데요. 지난 13일 개봉한 서영희 배우 주연의 <뒤틀린 집>을 제외하고는 국산 공포영화는 개봉 소식이 없고요. 그래도 꾸준히 인기를 끌었던 외산 영화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멘>이 유일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타공인 호러 마니아인 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혹자들은 “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서워서 그래”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만 사실 저는 사실 이 이야기에 공감하지는 않습니다. 굳이 이유를 꼽아보자면, 공포 그 자체를 배가하는 ‘낯선 연출’이 반복되면서 익숙해지고, 개인화가 되면서 관객들의 ‘사회상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포인트가 약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데요. 오늘은 이 ‘낯선 연출’ ‘사회상의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호러무비 <여고괴담>(1998)을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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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두 번이나 봤던 DenH의 시선

_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의 위력

 

고등학교 시절 제 꿈은 놀랍게도 가수였습니다. 그것도 데이비드 보위 같은 록스타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자를 빼먹고 노래방을 다녔고, 보컬 학원을 다니겠다며 보충수업을 빼달라고 했다가 담임선생님께 피멍이 들도록 빠따(?)를 맞곤 했지요. “너는 대학 갈 의지가 없냐?”는 이야기는 덤이었습니다. 물론 성적 또한...

 

이런 나쁜 선생님, 이젠 없으시겠죠?

 

그런 질풍노도의 2000년대 중후반에 고등학생이던 저는 처음 <여고괴담>을 보고 주인공 지오(김규리)의 모습에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매일 교실 구석자리에서 MP3로 록음악이나 듣던 게으른 문제아 같던 제 면모가 캐릭터와 닮은 것도 그렇지만, 공부에 의지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를 받던 모습이 더더욱 그랬습니다. 싸이월드 감성이 충만하게도 “학교라는 감옥에서,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공부라는 벌을 받는” 것만 같았기에, 오히려 선생님들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에서는 무서움보다는 통쾌함도 느끼곤 했지요.

 

그리고 2년 후,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엔 가수의 꿈을 내려두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을 때는 지오가 아니라, (열등생의 입장에서는 늘 부럽기만 했던) 우등생인 정숙(윤지혜), 소영(박진희)도 나름의 고민을 갖고 히스테릭한 면모에 고민하면서 ‘성적으로 구분 짓는 작은 사회’의 불만에 공감했습니다. 물론 십수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다들 친하게 지내지만, 왜 때문인지 그때는 내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선 꺾고 눌러야 하는 경쟁자로 생각했고, 때로는 미워도 했던 그 면모가 이들을 닮았었지요.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라는 심경으로 했던 재수생 시절에는 학교에 남겨진 후회를 해소하기 위해 매년 새로운 이름으로 학교를 계속 다니던 귀신 XX(스포일러니까 감춥니다)에 공감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여고괴담>이 제게 큰 감명을 준 공포영화로 남아있는 까닭은 이처럼 내가 실제로 겪었던 시절의 감정을 극대화해서 표현함으로써 그 상황 속에 더 격하게 이입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쩌다보니 그 시절을 우당탕탕 극복해 살아가고 있지만, 자칫하면 나도 귀신이 된다거나, 귀신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러한 낯설지만 익숙한 공포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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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놀란 것뿐이라고요? 그게 무서운 겁니다.

 

언제부턴가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명 ‘점프 스케어(Jump Scare)’에 대해 많은 분들이 부정적인 평가를 남기기 시작했더군요. ‘이건 무서운 게 아니야! 단지 놀라는 것 뿐이라구!’ 맞습니다. 사실는 놀래키는 것이지요. 물론 이게 진짜 무서워지려면 효과적으로 제대로 연출해야 합니다. 특히 너무 남발된다거나 뜬금없이 사용된다면 잘못 활용된 기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여고괴담>은 이 점프 스케어를 비롯한 ‘놀람’의 요소를 굉장히 잘 활용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특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귀신이 복도 끝에서부터 갑자기 다가오는 장면이 대표적이지요. 이 기법이 효과적이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게 바로 ‘사운드’입니다. 위의 장면을 감상할 때 만일 귀를 막고 있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장면처럼 보였을 테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사실 무서워하는) <여고괴담>의 사운드는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입니다. 이 시끄러운 파열음을 위해 영화는 고요한 가운데 자그마한 소리에 꾸준히 집중하게 하는데요. 물웅덩이를 밟는 구두소리, 바람에 책장이 넘겨지는 소리, 분신사바를 하는 학생들의 조심스런 목소리, 커튼이 펄럭이는 소리,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플래시가 켜지는 소리 등. 잔뜩 긴장한 채 이 작은 소리들에 집중하고 있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창문과 석고상이 깨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버리는 식입니다.

 

물론 영화가 개봉한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고 요즘 기준에선 조금 촌스럽게 보일 수는 있지만, 지금 보아도 그 공포감만은 유효합니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연차를 쓰고, 한가로운 평일 오전에 본 <여고괴담>은 역시 무서웠습니다. 물론 더욱 무서운 건, 내일이 돌아오면 다시금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지만요.

 

회사에 출근하는 것보다, 아무리 귀신이 나오는 학교일지라도 ‘등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비단 저만이 하고 있는 생각은 아니겠지요?..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영화보다 일상이 더 공포스러운 것 같긴합니다..

(이러니까 공포영화가 안 나오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