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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개같은 삶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모레스 페로스>

DenH 2022. 5. 1. 14:37

때는 2019년 초,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집에서 뒹굴 거리던 석 달간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재취업을 준비 중입니다” 했지만, 사실 나이브하게 본다면 그냥 ‘백수’였었지요. 모두 그런 시기가 한 번 쯤은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유로운 척은 해보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안감을 숨길 수 없는 시간. 친구/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포자기 할 수밖에 없었던 무의미한 시기. 석 달 동안 외출이라곤 라면 사러 편의점에 가는 것 밖에 하지 않았던 그 시기.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이른 오후에 잠에서 깨 라면 한 그릇을 먹고서, TV 예능(강호동씨가 나오던 <대탈출>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는데, 안방에서 강아지 ‘감자’(갈색 푸들 / 중성화 完 / 당시 5살)가 졸린 눈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오더니 제 옆 소파에 누워 TV와 제 얼굴을 번갈아 가며 기웃거렸습니다.

 

감자 얼굴 보고가세요 :)

 

물론 감자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그때 문득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습니다. ‘너나 나나 참 똑같다’ -> ‘평생 얘처럼 살고 싶다’ -> ‘내 인생은 지금 참 개같구나...’ -> ‘나는 개를 꿈꾸고 있는 건 아닐까?’ -> ‘나는 개인 게 분명해....’

 

이런 생각까지 하고나서, 저는 보고 있던 예능을 끄고 영화 <아모레스 페로스>(2000,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를 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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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스 페로스, 사실 잘은 모르지만 스페인어로 Amores perros는 ‘사랑은 개’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영화는 세 캐릭터들의 삶을 ‘개’와 비교해 나열합니다.

 

 

옥타비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는 형 라미로에게 학대당하는 형수 수잔나를 사랑하며, 함께 도망가기 위해 애견 코피를 투견장으로 몰아세우는 인물이고요. 잘나가는 패션모델 발레리아(고야 톨레도)는 부자 남자 다니엘과 불륜을 저지르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걷는 법을 잊은 채 애견 리치와 넓은 아파트에서 노는 것을 낙으로 삼은 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삶은 각각 투견과 애견으로 은유됩니다. 하루도 싸우지 않고서는 살수 없는 위태로운 인생, 누군가의 애정을 갈구하며 조용히 사랑을 기다리는 인생. 직접적인 대사로 나오지는 않지만, 이들도 저처럼 개들을 보며 ‘너나 나나 참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이 개같은 삶의 말로는 참으로 비참하게 그려집니다. 옥타비오는 투견으로 번 돈을 모두 잃고 깡패에게 쫓기다가 과속으로 사고를 당하고, 발레리아는 사랑이 식어가는 애인으로 인해 괴로워하죠. 이들이 개를 욕망의 도구로 썼던 것처럼, 누군가의 도구로 이용되는 삶이 올바른 인생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제 ‘개 같은 인생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고,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자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 치보(에밀리오 에체바리아). 실패한 혁명가입니다. 일명 사파티스타(멕시코 반정부 무장 봉기 단체) 출신으로, 감옥에서 수십 년을 복역하다 출소한 뒤 이따금씩 청부살인으로 연명하죠. 가족에겐 돌아갈 수도 없을뿐더러, 거리의 온갖 더러운 오물에 몸을 담근 채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본인 조차도요.

 

 

언어학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기호와 언어들은 스스로 그 의미를 구성하지 못하고, 오로지 관계를 통해서만 의미가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예컨대 ‘오른쪽으로 가시오’하는 표지판을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표지판은 의미가 없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아무도 나의 존재를 모른다면, 나를 봐주지 않는다면 ‘내 삶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모레스 페로스>는, 엘 치보는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떠돌이 개들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갈 곳 없이 더러운 쓰레기 곁에서 살아가는 게 아마 본인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겠지요.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밑바닥 삶에서 ‘나와 같은 <것>들도 있다’고 위로를 받는, 어쩌면 이기적인 보살핌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한 마리의 버려진 투견(코피라고 불렸던)을 만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엘 치보는 사고를 당한 옥타비오의 차 안에서 총을 맞은 코피를 구출합니다. 그러나 치보가 청부살인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치료를 받은 코피는 치보의 떠돌이 개들을 모두 물어죽이고 맙니다. 다른 개들을 죽이도록 훈련 받은 개, 그 잔혹함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눈빛에 화가 나 총을 겨누었던 치보는 총구를 거둡니다. 무장 봉기, 청부 살인을 통해 잔혹함을 일상으로 삼았던 자신의 모습을 개에게서 비쳐본 것일 테지요.

 

스스로도 되돌아보지 않았던 ‘나’ 자신을 개를 통해서 되돌아보며, 치보는 삶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떠돌이의 삶, 새로운 삶을 찾아 코피와 함께 스크린 바깥으로 걸어 나가기로 결심합니다. 돌아갈 수 없었던 가족들에게 자신이 돌아왔음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 말이지요. 이 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 그의 삶에 의미가 생겨버립니다.

 

물론 아직도 그의 삶이 밑바닥임에는 변함없습니다. 하지만 검은 땅을 코피와 함께 걸어가는 치보의 뒷모습에서 알 수 없는 희망을 느끼게 되는 건,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아무튼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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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몸을 일으키니, 옆에서 누워있던 감자가 밥그릇을 입에 물고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 너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도 너처럼 살아야겠다”

 

그로부터 3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때의 결심이 흐트러질 때마다 이젠 8살이 되어버린 감자를 바라봅니다. 여전히 밥 시간이 되면 밥그릇을 물고 꼬리를 흔드는 녀석을 보면, 월급날 즈음 되면 표정이 밝아지는 제 모습이 겹쳐 보이곤 합니다.

 

네, 아직 저는 개처럼 살고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