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영이

순수함을 되찾고 싶을 때 꺼내보는 <러브레터>

DenH 2023. 1. 23. 19:05

제가 나이가 들면서 가장 아쉬운 일은 바로 예전과 같은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순간 영화를 볼 때도 ‘재밌다’는 감상이 아니라 기계적인 ‘평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술을 마실 때에도 어떻게든 술 한 잔 속에 삶의 고뇌를 녹여내려고 하며, 연애를 할 때도 설렘보단 편안함을 찾게 되더군요. 정말 순수하게 순간의 즐거움을 느껴본 게 언제인지 싶습니다.

 

이 변화를 최근 <아바타: 물의 길>을 볼 때 아주 여실히 느꼈습니다. 분명 10여 년 전 이십대 초반에 <아바타>를 보았을 땐 멋진 비주얼의 황홀경에 빠져 허우적대던 기억이 나는데, <아바타: 물의 길>을 볼 때는 지가 뭔데 마치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史 뉴테크놀로지편 : <아바타: 물의 길>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심사하는 것 같은 태도로 영화를 보고 있더란 말이죠.

 

그 때 아주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아, 나 진짜 변했구나’

 

그래서 집에 와서 허겁지겁 영화 <러브레터>를 틀었습니다. 지금까지 50번 쯤 보았을 이 영화를 제가 꾸준히 찾는 건 ‘어른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순수한 감정이 필요하다’는 강렬한 한 줄의 깨달음을 전해주는 까닭입니다.

 

 

[줄거리]

 

“가슴이 아파 이 편지는 차마 보내지 못하겠어요.” 첫사랑을 잊지 못했던 그녀, 와타나베 히로코

“이 추억들은 모두 당신 거예요.” 첫사랑을 알지 못했던 그녀, 후지이 이츠키

 

2년 전 설산에서 목숨을 잃은 남자친구 후지이 이츠키를 아직 잊지 못한 와타나베 히로코는 우연히 본 옛 연인의 졸업앨범에서 이미 없어졌다고 하는 옛 집의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알 수 없는 곳에서 온 편지를 받게 된 후지이 이츠키, 그는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는 여성이다. 그리고 그는 짧은 편지에 답신을 보낸다. “잘 지내고 있어요. 감기엔 걸렸지만...”

 

와타나베 히로코가 남자친구와 동명이인의 여성에게 편지를 보내고만 것. 착각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펜팔. 우연한 편지를 통해 둘은 조금씩 새로운 삶을 향한 힘을 얻게 된다.

 

 

 

▶ 기억에 감정을 쌓으면 ‘추억’이 된다

 

<러브레터>는 후지이 이츠키(男)를 사이에 둔 와타나베 히로코, 후지이 이츠키(女) 두 사람의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히로코 입장에서 이츠키(男)는 잊을 수 없는 사랑의 기억을 남겨준 사람이고, 이츠키(女) 입장에서는 그냥 학창시절에 이름이 같아서 에피소드가 있었던 잊힌 친구에 불과했지만요.

 

[히로코의 사연]

 

 

히로코는 이미 죽은 남자친구를 잊지 못해 주변인들로 하여금 안쓰러움을 자아내는 인물입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마치 눈이 포근한 이불이라도 되는 양, 새하얀 눈밭에서 누워 시작하는데요. 반대되는 색깔이지만 클로즈업에서 롱쇼트로, 롱쇼트에서 익스트림 롱쇼트로 멀어지면서 풍경과 동화되는 그의 모습은 아직도 연인에 대한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지극히 쓸쓸한 감정은 줄거리 소개에 말한 것처럼 연인의 옛 주소로 편지를 쓰게끔 만듭니다. 이윽고 이 편지에 답신이 오고, 그 편지가 사실 연인과 이름이 같은 중학교 동창에게서 온 것이라는 걸을 알게 되지요.

 

 

그렇게 그녀는 알지 못했던 연인의 추억을 좇아 오타루로 향하게 됩니다. 그의 흔적을 찾아보던 중 그곳에서 스친, 본인과 많이 닮은 여자가 펜팔의 주인공인 것 같다고 느끼게 되지요. 그리고 생각하게 됩니다.

 

혹시 죽은 연인이 나를 사랑했던 까닭이 첫사랑과 내가 닮아서인 것은 아닐까? 그럼.. 나는 그에게 무슨 존재인 거지?

 

 

[이츠키(女)의 사연]

 

 

모르는 여인에게서 온 펜팔이 조금 지겨워질 때쯤, 히로코가 비밀을 밝히게 됩니다. “사실 이 편지는 졸업앨범에서 찾은 겁니다. 죄송하지만 그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다면 얘기해주지 않을래요?” “그 시절 이츠키와 저는 이름이 같아서 자주 놀림을 받곤 했어요.” 그렇게 이츠키(女)는 잊고 지냈던 중학교 시절의 기억을 꺼내 봅니다.

 

단지 이름이 같아서 커플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일부터 같이 도서위원으로 활동하던 일, 그리고 이츠키(男)가 아무도 빌리지 않는 어려운 책의 도서카드(대출할 때 이름을 적는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넣는 것을 좋아했던 일 등.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이런 소소한 일들을 되짚어보면서 이츠키(女)는 생각합니다.

 

그가 혹시 나를 좋아했을까? 그리고 나도 혹시 그를 좋아한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소소한 기억들은 풋풋한 감정이 쌓여 ‘첫사랑의 추억’으로 격상해 갑니다.

 

 


 

그렇게 이츠키(男)를 사이에 둔 히로코와 이츠키(女)는 감정을 전이시키면서 한 걸음 성장해 나갑니다. 히로코는 옛 사랑 감정을 딛고 다시금 일상으로 또 ‘이츠키의 연인’이 아닌 ‘와타나베 히로코’로서 다시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요. 이츠키(女)는 ‘나도 사랑 받을 자격이 있던 사람이구나’라는 점을 깨닫고서 더 즐거운 일상을 향한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 추억을 되짚는 일, 어쩌면 내 지난날에 대한 ‘천도제’

 

저는 ‘천도제’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종교적인 말이지만 이를 그냥 개인적으로 치환한다면, 아쉬움과 아픔의 흔적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서, 앞으로 더 잘 살아가는 데 힘을 준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러브레터>는 사랑 감정에 대한 ‘천도제’처럼 보입니다.

 

천도제는 영신(迎神), 접신(接神), 송신(送神)의 과정을 거치는데요. 쉽게 말해서 부르고, 받아들이고, 잘 보내는 것입니다. 이 신(神)이라는 단어를 기억으로 바꾸면 딱 <러브레터>의 스토리라인입니다. 잊고 지냈던 기억을 불러 일으키고, 거기에 감정을 쌓아 추억으로 받아들이며 그 힘으로 말미암아 내일 더 즐거운 기분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것.

 

저랑 많이 닮았나요?

 

와타나베 히로코는 남자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 수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그리워한 채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감정이라고는 오직 ‘그리움’만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죠. 하지만 이츠키(女)와의 편지를 통해 다시금 많은 감정을 받아들입니다.

죽은 이츠키(男)가 자신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첫사랑과 비슷한 외모라는 점을 깨닫고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어쨌든 서로가 ‘사랑했다’는 변하지 않은 사실 속의 ‘아련함’을 인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말이죠.

 

그리고 그는 이제 묵혀두었던 감정을 정리하면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후지이 이츠키(女)는 몇 해 전 자신을 무척이나 사랑해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매일매일 그저 그런, 심심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다지 내일이 기대가 되지 않던 그런 삶이었죠. 하지만 그 역시 히로코와의 펜팔을 통해 첫사랑의 기억을 되짚으며, 그리고 늘상 옆에 있는 가족들의 사랑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나도 사랑 받았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랑을 받을만한 사람이구나”

 

그도 역시 이제 지루했던 일상을 조금은 더 즐겁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두 여인이 그리움을 설렘으로 환기하는 이 기분은 아주아주 유명한 장면으로 시각화, 청각화 됩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난 잘 지내고 있어요.’

 

 

한 여인은 눈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드넓은 설원에서 목이 터져라, 한 여인은 비좁지만 겨울의 잔상을 지워주는 햇살 가득한 병실에서 나지막이 오랜만의 안부를 속삭인다. 소중한 이를 앗아간 ‘눈’이라는 오브제가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원망과 그리움의 상징으로 자리하지만, 이제 그 눈은 더 이상 아픈 것이 아닙니다. 햇볕 가득한 배경에 쌓인 잔설처럼 그들의 기억은 이제 그리움이 아닌 아련한 겨울의 추억이 되었으니까 말이지요.

 

 


 

‘어른’이 되어버린 제가, 이따금씩 <러브레터>를 꺼내 보는 것도 와타나베 히로코, 후지이 이츠키 두 여인의 편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나도 순수했던 시절의 추억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익숙한 사실을 환기하며, 내일 조금 더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과 ‘지금의 내 모습도 언젠가 추억이 되겠지?’라며 조금은 변한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

 

물론 ‘지금’이 쌓인 눈처럼 차갑고 무겁고 아플 수는 있지만요.

언젠가는 되돌아 볼 수 있는 때가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