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영이

[꼬영이] “인생도 Ctrl+Z가 되나요?” 회귀/타임슬립에 대한 짧은 생각

DenH 2022. 12. 10. 18:11

엑셀이나 워드로 일을 하다보면 가끔은 좌절감에 빠지곤 하죠. 대표적으로 실수로 문단 하나를 드래그한 채 스페이스 바를 눌러버렸다거나, 혹은 나도 모르게 'Insert' 버튼을 누른 채 정신없이 글을 쳐 넣었을 때? 그러다가 ‘아차!’ 싶어서 간절하게 찾는 단축키가 있으니, 이름하야 ‘Ctrl+Z’(실행취소).

 

‘Ctrl+S’(저장하기)를 깜빡한 뭇 직장인들(저 포함)에게 남은 최후의 희망이자 보루인 이 단축키를 보고 있으면, 아주 먼 옛날부터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회귀/타임슬립’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오늘은 ‘Ctrl+Z’의 은혜를 꼭 닮은 회귀/타임슬립 콘텐츠가 왜 이렇게 끌리는지,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콕콕 자극하는지를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 한 번 더 기회를 줘!!

 

자, 드가자~ 과거로! <어벤저스 : 엔드게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는 신조어가 있을 만큼, 요즘 많은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힘듦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선택의 연속인 인생이기에 우리는 늘 하지 못한 선택에 대한 후회를 가지고 살 수 밖엔 없었겠죠. 그래서 ‘시간을 되돌려서, 그때 이런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특히나 큰 실패를 경험한 후라면(저 같은 경우에는 코인을 더 일찍 팔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더더욱 그렇죠.

 

많은 회귀/타임슬립 콘텐츠는 이 후회를 기반으로 합니다. 물론 <백투더퓨처>처럼 예외도 있지만요.

 

제가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선 2022년의 직장인 윤현우(송중기)가 1987년 재벌 3세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많이들 경험했을, ‘IMF’에 대한 후회가 있었죠. 또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는 타노스를 막지 못했다는 후회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이프온리> <어바웃 타임> 등 로맨스 타임슬립 영화에서는 망가져 버린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후회를 경험하면 ‘기회’를 갈구합니다.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을 다시 채워 넣을 정도의 기회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오지 않고,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물을 엎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이런 콘텐츠에서나마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고자 하는 판타지를 충족하고 싶기에 자연스럽게도 ‘회귀/타임슬립물’을 찾게 되는 건 아닐까 합니다.

 

▶ 으하하! 미래를 알고 있는 ‘나’님은 전.지.전.능 하다구?

 

 

하지만! 단순히 한 번 더 기회를 얻었다고 해서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미래를 알고 있어야만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거죠. 이른바 게임에서의 ‘치트키’와 같다고 할까나요. 우리도 흔히 그렇잖아요. ‘로또번호 기억해 둘 테니 딱 십년 전으로만 갔으면 좋겠다’거나 ‘2010년으로만 돌아가면 내가 바로 비트코인 산다’, ‘과거로 가서 할아버지한테 강남에 땅 사시라고 하고 싶다’는 희망말이죠.

 

‘회귀/타임슬립’ 콘텐츠 속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 같이 미래를 알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대부분은 <어벤져스: 엔드게임> <어바웃 타임>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이프 온리> 등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미래를 바꾸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물론 우리가 'Ctrl+Z'를 누르고 앞선 결과물을 바꾼다 해도 완벽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우리는 이 판타지의 주인공들이 마치 나 대신 과거로 떠난 ‘대리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응원하곤 합니다. 이 대목이 회귀/타임슬립 콘텐츠의 가장 큰 매력인 셈인데요.

 

심지어 요즘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어게인 마이 라이프> 등에서처럼 알고 있는 미래를 활용해서 ‘먼치킨’급의 활약을 펼치는 주인공들이 대세로 떠오르기까지 했습니다. 이 드라마 속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미래를 알고 있다’는 우월감을, 또 때로는 악인에 대한 통쾌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지금을 후회하는 마음이 굉장히 큰 것이라 할 수 있겠죠.

 

 

 


 

[DenH의 타임슬립 명대사]

- 시간을 달리는 소녀

<Time waits for no one>

 

이 문구는 영화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보여지는, 하지만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문장입니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뜻의 이 말에 영화가 품고 있는, 또 많은 타임슬립 영화들이 품고 있는 주제를 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시간을 아무리 되돌릴 수 있어도, 과거를 바꿀 수 있어도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 사실 우리 모두 다 잘 알고 있죠.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또 혹여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별반 달라질 건 크게 없었을 거라는 것도요.

 

마치 오늘 그렇게나 Ctrl+Z를 눌러댔어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혼이 나고 말았던 저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