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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독고다이!?” <나 홀로 집에>에 대한 30대 미혼남의 단상

DenH 2022. 12. 18. 18:47

이상하게도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마음이 들뜨곤 합니다. 이천여 년 전 한 인물의 위대한 탄생을 기리기 위한 날이건만, 사람들은 늘 이 날에 누군가와 ‘함께’ ‘무엇을’ 해야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곤 하죠. 하지만 이 축제 같은 분위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우박이 쏟아지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라는 숱한 싱글들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어주는 영화가 한 편 있으니, 그 이름도 위대한 <나 홀로 집에>가 그 주인공입니다.

 

개봉한 지 무려 30년이 훌쩍 지난(필자와 동갑인) 지금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톡톡 건드리는 이유에 대해서 30대 싱글남의 입장에서 한 번 살펴봤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우박이 내리게 해 주세요.. A-Men.."

 

▶ 죄송하지만, 혼자 있고 싶으니 다 나가주세요.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2’을 살펴보니, 재밌는 결과가 하나 있더군요. 바로 “한국인의 쉼 활동” 1위가 바로 ‘내 집’에서 ‘혼자’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자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평일 간에 이뤄지는 사회 활동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는 ‘관계’의 고단함을 상징하는 결과인 것 같습니다.

 

이 고단한 삶은 <나 홀로 집에> 속 케빈 맥칼리스터(맥컬리 컬킨)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9살 소년입니다. 내 몫의 치즈피자를 다 ‘처먹은’ 짜증나는 형과 늘 나를 타박하는 가족들, 오줌싸개 친척 동생과 말썽꾸러기라고 소리나 질러대는 삼촌까지. 비좁은 어린 소년의 인간관계도 참으로 고단합니다.

 

결국 ‘한국인’ 그리고 ‘케빈’은 ‘인간관계의 고단함’으로 통하는 공감대를 갖고 있습니다. 이 공감대가 바로 우리가 <나 홀로 집에>에게 깊게 빠져드는 첫 번째 포인트가 되지요. 그리고 영화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우리가 마음 속 깊숙이 숨겨두고 있던 소망을 실현합니다. “아.. 진짜 혼자 있고 싶다...”

 

우리가 혼자 있고 싶은 까닭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케빈도 이와 다르지 않았죠. 치즈피자 한 판을 혼자 다 먹는다거나 엄마가 못 보게 했던 마피아 영화를 보고, 형이 감추어둔 비상금을 몰래 꺼내 흥청망청 써버리지요. ‘눈치 보지 않고’ 행하는 일탈의 즐거움은 참으로 부럽기 그지 없습니다.

 

혼자서도 잘해요 :)

 

▶ 어쩌면 나, 조금 대단한 사람이었을지도?

 

우리는 늘 나를 ‘구속’하는 것들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예컨대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라는 감옥만 벗어나면’, 군대에 가 있을 때에도 ‘군대만 전역하면’, 회사에서는 ‘내가 퇴사하고 나면!’, 집에서 잔소리를 들을 때도 ‘내가 독립만 하면...’하고 말이죠. 물론 사실 이 생각이 현실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영화 속 케빈은 혼자만의 라이프를 즐기던 중 해리(조 페시)와 마브(다니엘 스턴), 2인조 도둑 ‘젖은 도둑파(Wet Bandit)’가 온 동네를 다 털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그들의 다음 타깃이 바로 자신의 집이라는 것도요. 보통의 어린이였다면, 기절초풍할 일일 테지만 그는 담대하게 “지금 집주인은 나다! 용감해야 해!”하며 건장한 어른들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결론은 모두가 아는 그대로, 멋진 전략으로 승리를 쟁취해 내지요.

 

조금... 아플지도?

 

어릴 때 이 장면을 보면, 어른들이 어린애 장난 같은 트랩에 낚여 쓰러지는 모습이 마냥 웃기기만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늘 치이며 살아서 존재감이 옅었던 케빈이 멋지게 집을 지키고, 악당을 혼내줬다는 사실이, 어쩌면 이 장면들은 ‘우리가 늘 망상이라고 치부하면서 살았던 ’상상‘이 기어코 현실이 되었을 때, 얼마나 큰 성취를 거둘 수 있는지’를 상징이기도 하면서, 또 자존감이 낮은 채로 살았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그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힘은 ‘나를 구속하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일 테지요.

 

 

▶ 그래도... 나 혼자서 살기는 힘들지

 

이처럼 케빈은 혼자서도 참 잘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래도 ‘함께’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옆집에 사는 말리 할아버지(로버트 브로좀)와의 관계입니다.

 

두 인물은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말리 할아버지는 과거의 과오로 가족들과 거리를 둔 채 살아가고, 케빈은 사소한 이유로 가족과 멀어져 버렸죠. 이외에 둘의 공통점은 없습니다. 케빈은 말리 할아버지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형 버즈에 따르면 연쇄살인마라는..)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말리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손자뻘인 케빈과 친해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이얍! 뚝배기!!" (참고로 뚝배기는 머리입니다)

 

하지만 둘은 단 한 번 속내를 털어 놓는 대화로 교감을 하고 관계를 잇습니다. 그리고 이 관계로 인해 케빈은 ‘혼자서도 잘해요!’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도 위기에서 큰 도움을 얻게 되고, 말리 할아버지는 ‘혼자서도 괜찮아..’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도 가족을 향한 용기를 내게 됩니다.

 

다시 말해 <나 홀로 집에>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던 우리에게 “맞아, 너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데.. 그래도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하는 것도 좋을 거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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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우리도 모두 다 알고 있지 않나요? 혼자 있고 싶은 때는 ‘잠깐’ 이라는 걸 말이지요. 물론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혼자 있어도 괜찮습니다. 잠깐 즐기는 혼자만의 시간이 우리에게 큰 힘을 줄 터이고, 우리의 상상을 현실로 바꾸어 내기 위해 필요한 자신감과 용기를 줄 테니까요.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곧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 나은 ‘함께’를 향해 걸음을 내디뎌 보는 건 어떨까요. 케빈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이미지 출처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