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영이

[꼬영이] "동감에 공감하기엔 참 아쉬운 한끗" <동감>을 보고서

DenH 2022. 11. 20. 17:04

 

저는 90년대-00년대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 의견에 ‘동감’하실 텐데요. 탄탄한 스토리와 특유의 세밀한 감정선이 가득한 그 시절의 로맨스를 기억하면서, ‘왜 요즘은 이런 작품들이 나오지 않는가’를 안타까워하던 1인으로서, <동감>의 리메이크 개봉 소식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21학번 Z세대에게 동감을 느낄 수 없는 ‘아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작 <동감>이 제게 남긴 몽글몽글한 감상이 아직도 짙게 가슴에 남아서 인지. 영화를 보고나서 한끗의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는데요. 오늘은 이 아쉬움에 대해 한 번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줄거리]

 

1999년, '용(여진구)'은 첫눈에 반하게 된 '한솔(김혜윤)'을 사로잡기 위해 친구 은성(배인혁)에게 HAM 무전기를 빌린다.

2022년, ‘무늬(조이현)’는 인터뷰 과제를 위해 오래된 HAM 무전기를 작동시킨다.

 

"씨큐... 씨큐... 제 목소리 들리세요?" 개기 월식이 일어난 날, 시간을 뛰어넘어 기적처럼 연결된 ‘용’과 ‘무늬’는 서로의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하며 특별한 감정을 쌓아가는데... 1999 - 2022 마음을 수신합니다.

 

 

▶ 순수함과 순진함의 차이? 부족한 설득력

 

 

우선 원작 <동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000년에 사는 남자 인(유지태)과 1979년에 사는 여자 소은(김하늘)에게서 느껴지는 인상은 ‘순수함’입니다. 소은은 민주화 운동으로 아주 혼란한 사회 속에서 ‘사랑’을 그리는 사람이고요. 인은 남들은 다 취업에 목숨 걸던 그 시절임에도 엉뚱하게 꽂힌 일에만 매몰되는 ‘오타쿠’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HAM을 통한 무선 통신에 꽂히게 된 것이지요.

 

현실을 다소 멀리하고 감정을 좇는 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순수합니다. 여기에 판타지를 검증해 나가는 과정도 참 재밌습니다. 인이 79년의 학보를 보고서 다가 올 미래를 설명하고, 이를 소은이 믿게 되는 과정은 ‘판타지적 요소’가 이 영화의 주요 소재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판타지’의 외피를 너무도 잘 쓰고 있기에, 이들이 생판 처음 만나는 상대와 ‘사랑, 우정’을 이야기 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습니다. 다른 시간대의 사람과 소통하게 되었다는 ‘호기심’이 곧 “시대가 흘러도 청춘의 고민은 변함이 없구나”라며 우정과 애틋함으로 변화하고, 이 감정은 또 곧 인의 말실수(인생 스포일러랄까요)로 인해 소은의 사랑을 포기하게 만들게 되며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감정선은 이해할 필요 없이 공감하게 됩니다.

 

 

반면 리메이크작 <동감>은 아쉽게도 서로가 미래/과거에 살고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과정이 조금은 두루뭉술합니다. 무늬는 학교 과제를 위해 오래된 HAM을 작동 시켰고, 용은 짝사랑하던 후배가 HAM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에게서 빌리게 된다는 것에서 왜 이들이 HAM을 쓰는가를 납득 시켰는데, 정작 중요한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것은 생략하고 넘어가는 인상입니다. ‘순수’해 보이기보다는 “사기 참 잘 당하겠다”는 ‘순진’함으로 보이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무늬가 인생 스포일러를 당하고 사랑을 포기하게 된 용이의 사연을 듣고 “꿈과 사랑, 소위 낭만”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게 참 씁쓸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애틋함이 공감되지 않는 상황에서, 용이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오히려 ‘낭만’을 느꼈다니! 사랑을 포기하게 된 용이의 입장에서는 진짜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과 다름이 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2022년의 대학생은 이 모습이 맞나요?

 

 

사실 저는 21학번 보다 99학번 형, 누님들과 더 가까운 학번입니다.(많이 가깝지는 않고 거의 중간이기는 한데...) 그래서 21학번에 대해 이 영화가 소묘한 모습이 정확한지는 따지기가 참 어렵습니다만, 표면적으로만 겉핥기 한 것 같은 인상은 지우기가 힘듭니다.

 

사실 99년 대학생 용이의 캐릭터 설정은 괜찮습니다. 기계과에 다니고 있지만, ‘작가’를 꿈으로 하는 그에게 사랑이라는 낭만은 참 중요한 인생 요소이지요. 갈팡질팡하는 청춘의 모습이 배우 여진구의 호연에 설득력도 나름 갖추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각본을 맡은 서은영 감독이 99년도의 감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시절 청춘의 모습을 잘 그려낸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다만 2022년을 살아가는 무늬와 영지(나인우)의 모습은 조금 아쉽습니다. 99년과 비교하여서 아직도 취업에 대한 고민은 많은 청춘의 인생 걸림돌이고, 그들 나름의 아픔이 있을 터지만 이 영화에서는 2022년 청춘의 고민이 표현돼 있지 않습니다. 다만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청춘의 모습’을 단순하게만 표현한 건 아닐까 싶네요. 이는 서은영 감독의 데뷔작인 <초인>에서도 잘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청춘은 결국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 모습이 요즘 세대를 동감하게 만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무늬-영지 두 캐릭터의 서사와 감정선이 다소 부족합니다. 무늬에게 선을 긋는 영지의 태도가 일순간 바뀌어 버리는 모습은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우게 만들죠. “남들과 출발점이 다르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하는 영지의 사연을 조금 더 조명할 수 있었다면, 사랑을 향해 용기를 내는 무늬-영지의 감성에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