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열전

기예르모, 괜찮아 1편이면 충분해!

필더무비 2022. 7. 16. 23:46

기예르모 델 토로

Guillermo del Toro

 

  • 1964년 10월 9일 생 (멕시코)
  • <미믹(MIMIC, 1997)>, <악마의 등뼈(The Devil's Backbone, 2001)>, <판의 미로(Pan's Labyrinth, 2006)>
  •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 2017)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골든글로브 감독상,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 수상.
  • <피노키오(Pinocchio, 2022)> 넷플릭스 오리지널 개봉 예정.

 

Guillermo del Toro ⓒ IMDb

 

 

 

#1. 판의 미로, 잊을 수 없는 통증

'심장이 이렇게 아플 수가..' 필더무비 [ 거장 열전 ]의 주인공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의 대표작이자 인생작 <판의 미로(Pan's Labyrinth, 2006)>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저의 심정이었습니다. 독특한 시대적 배경, 독특한 등장인물의 관계도, 기괴하고 독창적인 크리쳐들을 필두로 한 미장센.. 이런 거 다 필요 없습니다. <판의 미로>의 힘은 이야기 그 자체입니다. 필자가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팬이 된 이유이기도 하죠.

 

 

<판의 미로> 원작 포스터 ⓒ IMDb

 

이 영화는 기예르모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호러에 가까운 판타지 영화입니다. 동화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극 중 "현실은 차가우며 동화 같은 건 없다"는 대사처럼 실제로 있었을 법한 끔찍한 전쟁, 살상 장면과 호러무비 수준의 크리쳐들과 잔인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원래 지하세계의 공주였으나 인간의 세계를 동경하여 몰래 빠져나와 인간계에 도착하지만 햇빛에 눈이 멀고 기억도 잃고 추위에 시달리다 죽게 되었다는 설정입니다.

 

 

ⓒ IMDb

 

그녀가 다시 환생하여 다시 지하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환생한 사람이 '오필리아'라는 소녀이며, 그 시험을 가르쳐 주는 요정이 '판'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하필이면 1944년 프랑코라는 독재자가 반군과 전쟁을 치르던 스페인 내전 막바지, 중앙정부에 충성을 다하는 무서운 장교의 의붓딸이네요.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엮어 들어가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을 보고 이 천재적 감독의 이야기 실력에 감탄했죠.

 

 

ⓒ IMDb

 

 <판의 미로>는 지금까지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최고작으로 손꼽히는 명작이며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무려 22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22분이 아니라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기립 박수입니다. 볼 때마다 여운이 가시질 않습니다. 폭력적이고 광기 어린 군인 장교 새아빠와, 임신중독으로 쇠약해진 채 그의 2세를 낳는 용도로 전락한 친엄마의 무기력함 사이에서 느꼈을 오필리아의 깊은 절망과 외로움이 영화 내내 심장을 후벼 팝니다. 그래서 이 소녀가 원래 공주였건 아니건, 마침내 지하 세계로 되돌아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건 말건... 현실에서의 오필리아의 죽음만이 뇌리에 깊이 남습니다. 그 모든 것이 현실세계에서 도피하고 싶은 한 소녀의 망상이었다는 식의 해석도 있는데, 가슴이 아파 차마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2. 낄끼빠빠를 아는 사람

그는 원래 할리우드 특수효과 기술자 출신입니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그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가지고 멕시코 영화계의 문을 두드립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그의 첫 연출작 <크로노스(Cronos, 1993)>는 멕시코 아카데미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대 성공을 거둬 본격적인 영화감독의 길을 걷게 됩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바퀴벌레 판타지 영화 <미믹(Mimic, 1997)>, 판의 미로와 비슷한 시대 배경에 또 다른 호러 형태의 이야기 <악마의 등뼈(The Devil's Backbone, 2001)>가 큰 흥행은 못했지만 마니아와 평단의 호평을 받게 됩니다.

 

 

데뷔작 <크로노스> 포스터 ⓒ IMDb
당시로선 꽤 신박하고 충격적인 시각효과를 자랑했던 뱀파이어 액션 영화 <블레이드 II (Blade II, 2002)> ⓒ IMDb

 

그 후 웨슬리 스나입스 주연, 뱀파이어 호러 액션 영화 중 수작으로 꼽히는 <블레이드 II (Blade II, 2002)>의 흥행으로 그는 꿈에 그리던 <헬보이(Hellboy, 2004)>의 감독으로 낙점됩니다. 특수효과 출신답게 그만의 미장센이 돋보였습니다. 질감, 컬러의 표현은 한 차원 더 깊고, 묵직하고, 끈적거리며 거칠거나 축축합니다. 혐오스러움과 왠지 모를 귀여움을 다 가진 크리쳐 디자인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안타깝게도 <헬보이>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긴 했으나 제작사는 큰 수입을 얻지 못했습니다. 

 

 

<헬보이 2 : 골든 아미(Hellboy 2 : The Golden Army, 2008)> ⓒ IMDb

 

<판의 미로>가 그에게 큰 명성을 가져다준 2006년 이후의 작품들은 여러 모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헬보이 2 : 골든 아미(Hellboy 2 : The Golden Army, 2008)>는 흥행도, 평가도, 수익도 크지 못했습니다. 누가 봐도 일본 괴수영화의 클리셰 범벅인 <퍼시픽 림(Percific Rim, 2013)>은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였으나 흥행 성적이 좋지 못하다가 중국에서의 예상 밖 흥행이 겨우 살렸습니다. 이 작품이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전작의 흥행 실패 탓인지 그의 이야기 스타일이 할리우드 식으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뼛속 깊이 작가주의인 기괴함은 여기저기 묻어나지만요.

 

 

<퍼시픽 림(Percific Rim, 2013)> 포스터 ⓒ IMDb

 

단, 그는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는 기간에도 재능을 썩히거나 쉬지 않았는데요, 그는 감독으로 부담을 느낄 때면 고집을 피우지 않고 적당히 물러나 여러 영화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태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 크리쳐의 디자인과 콘셉트를 잡는 능력은 아주 탁월하거든요. 각종 영화에 각본 및 프로듀서, 제작자로 참여하였습니다. <스플라이스(Splice, 2010)>, <호빗 실사영화 시리즈(The Hobbit Trilogy, 2012~2014)>의 각본을 맡는 등 수많은 영화에 자신의 색체를 입힙니다. 

 

 

<메가 마인드(Megamind 2010)> ⓒ IMDb
<쿵푸펜더 2(Kung Fu Panda 2 , 2011> ⓒ IMDb
<장화 신은 고양이(Puss in Boots, 2011> ⓒ IMDb

 

게다가 애니메이션에도 관심이 많아 <메가 마인드(Megamind 2010)>에서는 창작 컨설턴트를, <쿵푸펜더 2(Kung Fu Panda 2 , 2011>에서는 창작 컨설턴트와 실행 프로듀서를, <장화 신은 고양이(Puss in Boots, 2011>에서 역시 프로듀서를, <심슨가족(The Simpsons)> 시즌 25에서는 의 오프닝 연출을 하는 등 다수의 작품에 자신의 재능에 맞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낄끼빠빠를 아는 사람,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3. 단 두 편의 마스터피스, 그래도 충분하다.

ⓒ IMDb

 

2017년 오래 기다린 그에게 드디어 영광의 순간이 다시 찾아옵니다. 그가 제작, 각본, 연출, 원안까지 모두 도맡아 한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17)>이 평단의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제7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인 금사자상을 받는데 이어 골든글로브 감독상까지 수상합니다. 그런데 끝이 아녔습니다. 2018년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미술상, 음악상 등 무려 4개 부분에서 수상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맞아, 이 양반이 전무후무한 다크 판타지 이야기꾼, <판의 미로>를 만든 사람이었지!" 새삼 깨닫는 순간입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17)> ⓒ IMDb

 

무지막지한 성공을 거둔 2018년 이후로 그는 흥행감독의 행보를 이어나가지는 못합니다. 원래 국내 흥행 성적은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조차도 안 좋았던 그이기에 거의 잊히다시피 했습니다. (부제는 국내 개봉작에만 붙기에 다르게 적었습니다.) 브레들리 쿠퍼,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한 그의 야심작이자 최초의 누아르 영화 <나이트메어 엘리(Nightmare alley, 2021)>의 흥행 참패로 그는 또다시.. 열심히 살고 있네요.

 

 

<나이트메어 엘리(Nightmare alley, 2021)> 포스터 ⓒ IMDb

 

클래식 음악계에도 단 1편의 작품만으로 알려졌지만 대체 불가한 작곡가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원 히트 원더 작곡가인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M.Bruch, Violin Concerto No. 1 in g minor, Op. 26)'은 클래식 역사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지만 그는 이 작품 말고는 크게 알려진 대표작이 없어요. 그러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연주하는 브루흐를 들어보면 어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도 느낄 수 없는 전율이 올라옵니다. 이 작품은 감상자에게는 축복 같은 인류의 유산이자 선물입니다. 저에겐 <판의 미로>가 그렇습니다. 지금껏 이 작품을 능가하는 클래식 호러 판타지는 만나본적이 없어요.

 

 

Max Christian Friedrich Bruch, 1838-1920 ⓒ Wikipedia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선악의 구분이 모호한 캐릭터들 투성이입니다. 권력과 안락함으로부터 소외된 계급들, 억압받고 오해받는 소수자들에 대한 상징이 넘쳐납니다. 그 모든 것들이 판타지의 구조속에서 갈등, 번뇌, 고통의 연결고리로 은유됩니다. 언제나 어둡고 칙칙하지만 묵직하고, 따뜻한 감동이 있습니다. 그의 머릿속엔 수천 가지의 괴물들이 자기 종족을 대표하는 이름표와 요구사항을 달고 언제든 출동 준비를 하며 여러 개의 다리를 꼼지락 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다크 히어로 <헬 보이> ⓒ IMDb

 

그런데, 도저히 같은 사람의 작품이라 볼 수 없는 <퍼시픽 림(Percific Rim, 2013)> 같은 유치뽕짝 로봇 영화도 재미있게 보았던 저는 제 취향이 가끔 뭘까 헛갈립니다. 음, 저는 그냥 기예르모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대박 흥행 작은 드물지만 유니크하고 독특한 세계관 일인자로 단 한 번도 졸작은 만든 적 없는 감독. 그의 다음 기대작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기획된 스톱모션 3D 애니메이션 <피노키오(Pinocchio, 2002)>입니다. 어차피 분위기는 동심 파괴 모드입니다. 가족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기예르모! 기대가 됩니... 솔직히, 걱정이 반이네요. 들쑥날쑥 한 이 거장의 차기작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제바알 ~!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걱정 반 기대 반 ⓒ Netflix 유튜브 공식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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