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열전

21세기의 베토벤, 한스 짐머 Hans Florian Zimmer

필더무비 2021. 8. 2. 22:00

출처 : https://www.decodedmagazine.com/

 

한스 짐머 Hans Florian Zimmer

 

  • 1957년 9월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출생
  • 1977년부터 현재까지 150여 곡의 영화음악 작곡
  • 블록버스터 영화 음악의 거장으로 ‘21세기의 베토벤’으로 불림
  • 1995년 아카데미 주제곡상 수상 : 라이온 킹(The Lion King, 1994)
  • 골든글로브 2회 수상 : 라이온 킹(The Lion KIng, 1994), 글래디에이터(Gladiator, 2000)
  • 그래미 3회 수상 : 라이온 킹(The Lion King, 1994),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 1996),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2009)
  • 할리우드 필름 어워즈 : 올해의 작곡가(2000)

 

21세기 가장 핫한 영화음악가

 

'21세기의 베토벤' 혹은 '걸어 다니는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한스 짐머. 그는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음악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존 윌리엄스, 엔니오 모리꼬네와 함께 '영화음악 3대 거장'으로도 불린다. 특히 마이클 베이, 리들리 스콧, 론 하워드, 크리스토퍼 놀런 등 블록버스터 감독들과 호흡을 맞추어 왔는데 웅장하고 실험적인 사운드로 화면을 꽉 채우고 긴장감과 에너지를 최고조로 끌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스 짐머의 대표작 중 일부(순서는 무작위). 출처 : IMDb

 

그가 참여한 작품들을 보면 현대 영화 음악사(史)를 주름잡았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수 있다. 대중적인 작품들만 추렸는데도 어마어마하다. 원제와 연도도 함께 넣었다. 일부러 더 많아 보이게 적은 건 아니다.

 

마지막 황제 (The Last Emperor, 1987), 레인맨 (Rain Man, 1988), 폭풍의 질주 (Days of Thunder, 1990),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 1991), 쿨러닝 (Cool Runnings, 1993), 라이온 킹(The Lion KIng, 1994), 더록(The Rock, 1996),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 글래디에이터(Gladiator, 2000), 미션 임파서블 2(Mission : Impossible II, 2000), 진주만(Pearl Harbor, 2001),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 2002), 배트맨 비긴스(Batman Begins, 2005),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 2006), 캐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Pirates of the Carabean : Dead Man's Chest, 2006), 캐러비안의 해적 : 세상의 끝에서(Pirates of the Carabean : At World's End, 2007), 심슨 더 무비(The Simpsons Movie, 2007),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2008), 쿵푸 팬더(Kung Fu Panda, 2008), 셜록 홈즈(Sherlock Homes, 2009), 인셉션(Inception, 2010),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Pirates of the Caribbean: On Stranger Tides, 2011), 쿵푸 팬더 2(Kung Fu Panda 2, 2011),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Sherlock Holmes: A Game of Shadows, 2011), 슈퍼맨 : 맨오스 스틸(Suerman : Man of Steel, 2013),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The Amazing Spider-Man 2, 2014),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 덩케르크(Dunkirk, 2017),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 2017), 엑스맨 : 다크 피닉스(X-Men: Dark Phoenix, 2019), 원더우먼 1984(Wonder Woman 1984, 2020),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 2020)..

 

 

음악은 됐(다고 믿는)다! 듄(Dune, 2021)

 

그리고  2021년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영화 '듄'이 개봉한다. 초대형 블록 버스터 SF 영화답게 음악은 당연히 한스 짐머다. 듄은 미국 소설가 프랭크 허버트(1920~1986)가 1960년대부터 집필한 6부작의 SF 대하소설이다. 원작의 세계관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웬만한 시각적 해석으로는 어림도 없으며, 보통 영화의 러닝 타임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그동안 수많은 제작사와 감독들이 도전과 포기를 반복해왔다.

 

 

Dune Official Poster, 2021. 출처 : IMDb

 

1984년작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듄'이 있지만. 감독 자신도 겨우 줄인 4시간 분량의 내용을 제작사 압력으로 2시간에 구겨 넣어 만든 '괴작'에 가까운 작품이다. 2000년 TV 미니시리즈도 방영되었지만 저예산의 한계가 컸다. 원래 최초로 영화화에 도전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있었다. 그와 함께 스크립트를 쓰던 댄 오베넌(훗날 에일리언과 토탈리콜의 작가가 된다)은 프로젝트 무산에 따른 스트레스로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다고 한다. 알레한드로는 이 영화를 무려 16시간 분량으로 기획했었다고 한다. 불쌍한 오베넌..

 

이후 여기저기로 판권과 프로젝트가 오가지만 누구도 감히 리스크를 감당 못해 프로젝트는 계속 엎어진다. 한마디로 잘못 손댔다간 폭망이며, 웬만큼 잘 만들어도 칭찬받기 힘든 프로젝트다. 결국 총대를 맨 드니 빌뇌브 감독이 '듀니버스(Duniverse, 듄 세계관)'의 시작을 어떻게 풀어낼까? 설렘 반 걱정 반이지만 한스 짐머, 그가 있어 음악만큼은 믿고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이 외에도 '007 노타임 투 다이(No Time to Die, 2021)'와 '탑건 : 매버릭(Top Gun : Maverick, 2021)'등 그가 음악을 맡은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 예정이다. 역시나 블록버스터 영화음악 장인다운 행보다.

 

 

Dune Official Trailer, 2021

 

NO TIME TO DIE Trailer, 2021

 

Top Gun: Maverick Official Trailer, 2021

 

관객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그가 작곡한 영화음악들은 상업적 성공을 넘어 '영화 음악은 어떻게 관객의 심상(心像, 이미지)에 작용하는가?'를 보여주는 교과서다. 영화음악은 멜로디, 화성 등의 음악적 완성도 외에도 장면의 분위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만약 코미디 영화의 장면을 적당히 편집하고 공포영화의 배경음을 넣으면 그냥 공포영화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스 짐머의 음악은 최고의 치트키다. 관객의 면전으로 뿜어져 나와 압도하고 장면 속으로 내동댕이치 치는 에너지가 있다.

 

 

Pirates of the Caribbean: At World's End Official Trailer, 2007

 

그의 해석과 구현은 단지 강력한 사운드를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웅장함만 반복되면 피곤하고 지루하다. 묘한 긴장감으로 귀를 사로잡다 마침내 강력한 임팩트를 몰아치는 한스 짐머의 기교는 어떤 영화에서도 큰 효과를 얻는다. 그는 반복되는 소리가  끊임없이 올라가며 서서히 심장을 조이는 듯한 음악을 자주 쓰는데, 다크 나이트,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등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스탠퍼드 대학의 로저 셰퍼드 교수가 1964년 발견한 '셰퍼드 톤(Shepard Tone)'이라 불리는 일종의 '착청현상(귀가 일으키는 착각)'을 이용한 것이다. 하나의 음계가 끝나기 전에 동일한 음계를 끼워 넣어 겹치면 기묘한 느낌의 사운드가 된다. 한스 짐머의 실험정신을 볼 수 있으며, 이런 스타일의 사운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Shepard Tone Sample

 

한스 짐머의 영화음악 교육용 영상.  조커의 테마 'Why so Serious?'

 

The Dark Knight Official Trailer, 2008

 

그는 음악 천재가 아니다

 

그의 음악은 명쾌하고 직설적이다. 어렵거나 낯설지 않다. 음식으로 치면 맛과 향 그리고 식감이 뚜렷한 요리이다. 그럼에도 항상 새롭고 실험적이며, 결국 트렌드가 된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매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베토벤, 모차르트 등 고전 음악의 거성들과 비교되지만 그는 천재들의 엘리트 코스나 정규 음악 교육 과정을 거친 적이 없다. 그러나 누구보다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는다. 대규모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맨파워와 물량으로도 다른 작곡가를 압도한다. 이 모든 것은 천재적 재능이 아니라 순전히 노력의 결과이자 편견 없는 개방성 덕분이다. '노력 천재'라 부르면 맞겠다.

 

 

출처 : https://www.hollywoodreporter.com/

 

그는 인재의 등용, 신기술의 적극 수용, 그리고 새로운 트렌드와의 적절한 타협에 거리낌이 없다. 평소의 성격도 유쾌하고 직설적으로 알려져 있다.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사운드 엔지니어들과 협업하며 관객들의 니즈(Needs)를 재빨리 파악한다. 클래식을 바탕으로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어떤 악기도 갖다 쓴다. 멜로디 중심적이거나 구조적이지 않다. 오히려 단순한 음의 반복을 주로 쓰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작곡가에 가깝다. 그래서 일부 비평가는 '식상하다'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어 하지만 시장의 반응과 성과가 너무 좋다.

 

 

"I have no technique and I have no formal education, so the only thing I know how to write about is something that's inside of me."

- Hans Zimmer on How to Be a Composer with 'No Technique and No Formal Education'

 

 

"나는 기술도 없고, 정규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글로 쓰는 것이다."

- 한스 짐머 '기술과 정규 교육 없이 작곡가가 되는 법' 중.

 

 

그 이유는 그만의 해석 방식에 있다. 장면 속 오브제, 질감, 컬러, 이야기, 카메라 무빙 등 모든 것에서 아이디어를 뽑아낸다. 토론하고 글로 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현장으로 찾아가 그곳 악기와 현장의 느낌을 집어넣는다. 삐걱대는 바이올린 소리, 조율이 나간 피아노 소리, 과도하게 찢어지는 대형 관악기 소리도 그의 손을 거쳐 믹싱이 되면 최고의 사운드로 거듭난다. 심장을 때리며 휘몰아치는 그의 음악이 등장한 이후 할리우드에서 '에픽(Epic, 장대한)'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정도다.

 

 

Man of Steel - "Fate of Your Planet" Official Trailer, 2013

 

Sherlock Holmes Official Trailer, 2009

 

Interstellar Official Teaser Trailer, 2014

 

'슈퍼맨 : 맨 오브 스틸'의 배경인 미 중부 평원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깃줄을 보고 거친 전자기타 소리를 떠올리고, '셜록 홈즈'에서는 독일인이지만 더 고향 같은 런던의 골목으로 달려가 집시들의 연주 소리를 그려 넣었다. '인터스텔라'에선 복잡한 수학계산을 가미하는 등 늘 쉽지 않은 길을 스스로 걸어간다. 그는 어릴 때부터 "왜 그래야 하는데요?"라는 질문을 달고 살아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7번이나 전학을 가야 했지만, 늘 세상은 그런 질문으로부터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는 법이다.

 

 

출처 : https://www.press.bmwgroup.com/

 

한스 짐머는 거장이라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어려운 용어를 쓰는 것도 싫어한다고 한다. 밴드 음악, 뉴에이지, 펑크 등 다양한 실용음악에 대한 경험이 이런 '대중의 눈높이'를 가지게 해 준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작가주의' 방식을 벗어나 협업과 토론을 중시하며 열린 사고로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받아들인다. 그에게 '음악의 정형성'은 중요하지 않다. 영화에 맞는 질감, 느낌, 그리고 기술이 있을 뿐. 그래서 그의 음악에 장르의 굴레를 덧씌우거나 기억에 남는 멜로디가 없다 거나 단순 반복이라 평가하는 것은 편협하다. 그것이 그 영화에 매우 잘 들어맞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동일한 멜로디의 변주로 가득 채웠던 시대에서 몇 초에 불과한 빠른 장면 전환과 음악의 질감을 중시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고 그 중심에 한스 짐머가 있다.

 

 

TMI

 

아카데미와 인연이 있는데.. 아니 없어요

그는 가장 최근 '인터스텔라(2014)'로 무려 10번째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수상작은 '라이온 킹(The Lion King, 1994)'이후로 나오지 않고 있다. 라이온 킹은 골든글로브, 그래미까지 싹쓸이했는데, 당시 아카데미 경쟁 작은 무려 포레스트 검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쇼생크 탈출이었다! 단 1회 수상이지만 라이온 킹은 지금까지도 아카데미 역대 최고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손꼽히고 있다. 골든 글로브는 글래디에이터(2000)로 두 번째 수상하였으며, 그래미상은 1996년 크림슨 타이드, 2009년 다크 나이트로 세 번째 수상한 바 있다.

 

 

The Lion King Original Trailer, 1994

 

Hans Zimmer winning Best Original Score for "The Lion King"

 

게임에도 그의 손길이

한스 짐머는 유명한 게임음악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 메달 오브 아너, 크라이시스, 어쌔신 크리드, 피파 19, 배틀필드, 커맨드 앤 컨커 등 게임도 블록 버스터급 액션 게임들이 대부분이다.

 

 

대작 액션 게임 콜오브 듀티 모던워페어. 출처 : https://www.nvidia.com/

 

2015년 국내 게임회사 네오위즈의 '블레스'의 게임 음악에도 참여하여 13곡의 스코어를 완성시켰다. 120명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합창단을 참여시켰고 반지의 제왕 OST 사운드 엔지니어의 손을 거쳤다고 한다. 역시 스케일이 남다르다.

 

 

네오위즈 게임 블레스(BLESS, 2016). 출처 :https://www.ajunews.com/

 

전기차 액셀을 밟으면 한스 짐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BMW는 좌우로 나뉜 독특한 전면 키드니 그릴(Kidney Grill, 콩팥 모양 그릴) 디자인이나 근육질의 캐릭터 라인 외에도 특유의 ‘엔진 사운드’로 대변되는 브랜드이다. 일반적으로 가속할수록 얇고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 다른 자동차 엔진과는 달리 낮게 깔리며 터져 나오는 중후한 터보 엔진음이 그것이다. 그 맛에 BMW를 탄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BMW 전기차 i4 (출처 :https://www.carmagazine.co.uk/)

 

그러나 전기차는 엔진이 없다. 운전자에겐 정숙하겠지만 보행자에겐 자동차의 접근을 느낄 수 없어 위험하다. 따라서 각 브랜드들은 인공적인 모터 소리를 만들어 넣는다. 엔진 사운드 맛집 BMW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새로운 시대의 BMW 전기차를 '소리'로도 기억되게 하는 것. BMW는 이를 '아이코닉 사운드 일렉트릭(BMW Iconic Sound Electric)'이라 정의하고 자신만의 영역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에 ‘한스 짐머’라는 거장을 선택한 것은 매우 현명해 보인다. 그는 위의 광고에서 보이듯 전기차의 구동과 가속감을 오묘하게 중첩되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멋지게 표현해 내었다. 그 아래 깔린 공명음 같은 베이스(Bass, 중저음)는 운전석 시트 아래서 강력한 자기장이 돌고 있는 것 같다. 예전 내연 기관의 엔진음에 맞먹는 전기 모터의 강력한 힘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엔진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진정한 운전의 즐거움’이 모토인 BMW의 정체성을 전기차에서도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제 한스 짐머가 만든 ‘전기차 사운드’때문에 BMW를 사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