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열전

넬라판타지아, 엔니오 모리꼬네 Ennio Morricone

필더무비 2021. 8. 2. 20:59

Ennio Morricone (1928 - 2020) / 출처 : scrapsfronttheloft.com

 

엔니오 모리꼬네 Ennio Morricone

 

  • 1928년 이탈리아 로마 출생. 2020년 별세(향년 92세)
  • 500편이 넘는 영화 음악 작곡
  • 영국 아카데미 음악 상 5회 수상
  • 3개의 그레미상 수상 - 최우수 사운드 트랙(언터처블, 1988), 명예의 전당(석양의 무법자, 2010), 공로상(2014)
  • 3개의 골든글로브 음악상 수상 - 미션(1987), 피아니스트의 전설(2000), 더 헤이트풀 에이트(2016)
  • 아카데미 음악 상 6회 노미네이트
  • 2007년 79회 아카데미 시상식 공로상 수상
  • 2016년 88회 아카데미 음악 상 수상 - 더 헤이트풀 에이트

 

 

거장, 별이 되다

 

지난 2020년 7월 6일, 수십년간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수많은 명곡을 선사한 엔니오 모리꼬네가 우리 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는 평생 500곡이 넘는 영화 음악을 작곡하였고, 영화 음악을 영화보다 더 사랑받게 만든 위대한 작곡가였다. 그 누구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서사와 시대상, 그리고 주제의식을 완벽히 해석해 내었고, 그의 선율 위에서 배우들의 표정 연기와 카메라의 무빙은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장면을 가득 채우다 못해 넘쳐흐르는 감정선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우리의 귓전에서 마음으로 맴돌았다. 범상치 않았던 데뷔작부터 평생이 전성기였던 그의 음악 세계를 돌아본다.

 

 

2007년 79회 아카데미 공로상 수상식에서. 엔니오 모리꼬네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으로 시작한 영화음악

 

엔니오 모리꼬네는 192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여섯 살 때부터 곡을 쓰고 열두 살 때 음악학교를 들어가 클래식과 트럼펫, 작곡을 배운다. 그가 10대 시절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은 지독한 굶주림과 끔찍한 전쟁의 기억을 남겨 주었으며 평생 그의 음악에 반영되었다고 한다. 초창기 음악가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재즈바에서 연주를 하기도 하고 레코드사 스튜디오 편곡자 생활도 했던 그는 영화 음악가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결심한다. 

 

 

평생의 동반자. 엔니오 모리꼬네(왼 쪽)와 세르지오 네오네(오른 쪽)

 

그는 고향 친구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 1929 - 1989)가 감독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의 성공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이 곡은 모리꼬네가 이전에 피터 테비스(Peter Tevis)라는 가수에게 편곡해준 ‘드넓은 초원들(Pastures of Plenty)’라는 곡에서 목소리를 빼고 휘파람 소리를 얹어 탄생한 곡이다.

 

 

 

황야의 무법자 (A Fistful Of Dollars, 1964)

 

사실 모리꼬네는 이 곡이 주제곡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다고 한다. 자신이 새로 작곡하겠다고 했으나 레오네 감독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그의 인생을 바꾼 역작이 되었다. 반복되는 스트링 선율을 배경으로 한 음산한 휘파람 소리와 말발굽 소리는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는 당시 영화음악의 관습인 풀 오케스트라를 답습하기보다는 트펌펫, 전자기타, 하모니카, 전통 악기 등을 메인으로 활용하는 새롭고 모던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지에서 저예산으로 제작된 서부극,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 헐리우드 정통 서부극과 차별화를 위해 선악이 모호하며, 잔인한 폭력 장면이 많이 담겨 자극적인 것이 특징이다. / 영화 석양의 갱들(A Fistful Of Dynamite, 1971)

 

사실, 답습할 예산이 부족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당시 헐리우드가 아닌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지에서 저예산으로 촬영되는 서부극인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의 제작 환경에서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동원할 돈이 없었다. 한두 가지 악기나 음향으로 신경질적인 고음과 아련한 선율을 오가는 그의 음악은 서부의 모래바람 속에서 서로의 가슴에 사연 많은 총알을 박아야 했던 비정한 시대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이런 독특함은 이후 서부 영화 음악의 원형이 되었다. 그가 처한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웨스턴 무비에 걸맞은 스타일을 탄생시킨 것이다. 1960년에서 1975년 사이 그는 서부 영화 음악으로 천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황야의 무법자 테마의 원곡 '드넓은 초원들'  (Pastures of Plenty)

 

황야의 무법자 테마 (A Fistful of Dollars, 1964)

 

석양의 무법자 테마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

 

제작비의 70배를 벌어들인 ‘황야의 무법자’의 큰 성공 이후 쭉 그는 세르지오 네오네의 작품인 석양의 건맨(For A Few Dollars More, 1965),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 석양의 갱들(A Fistful Of Dynamite, 1971)과 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1884)’의 주제곡을 맡았다. 여주인공 제니퍼 코넬리의 신비로운 눈빛을 잊을 수 없는 ‘데보라의 테마(Deborah's Theme)’는 지금도 회자되는 명곡이다.  또 한 명의 거장 한스 짐머(Hans Florian Zimmer)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음악으로 이 곡을 꼽았다.

 

 

데보라의 테마 (Deborah’s Theme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끝없이 성장하는 거장의 면모

 

엔니오 모리꼬네는 1970년대에 할리우드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1년에 20편에 달하는 영화 음악을 작곡하며 자신의 영감과 열정에 충실한 커리어를 쌓으며 전성기를 이어간다. 돈 시겔, 마이크 니콜라스, 브라이언 드 팔마, 베리 레빈슨, 올리버 스톤, 워렌 비티, 존 카펜터 등 당대의 핫한 감독들은 거의 모두 그와 작업했다고 보면 된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감각이 무뎌지기는  커녕  오히려 최고의 음악성과 노련함으로 주옥같은 명곡들을 쏟아낸다. 특히 1986년 영화 '미션(Mission)'의 테마 ‘가브리엘스 오보에(Gabriel’s Oboe)’는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관객의 감정을 휘어잡는다. 정글에서 원주민과 맞닥뜨린 위기 상황에서 선교사 가브리엘(제러미 아이언스 분)이 신이 내린 듯한 선율 연주로 그들의 경계심을 푸는 장면은 소름이 돋을 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문명과 언어가 만들어 낸 어떠한 술책도 인간의 내면에 심어진 ‘음악’에 대한 동질성과 감화를 대체할 수 없다.

 

 

가브리엘스 오보에(Gabriel’s Oboe - The Mission. 1986)

 

가브리엘스 오보에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의 원곡이다. 이 곡은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 1998년 작사가 키아라 페라우(Chiara Ferraù)의 가사를 붙여 처음 불렀다. 원곡의 아름다운 선율에 반한 그녀는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성악곡으로 부르게 해달라고 허락을 구했으나 거절 당하자, 2년간 편지로 끈질기게 간청하여 겨우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오래전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뮤지컬 음악감독 박 칼린이 지도한 합창단이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2016년 박기영이 ‘불후의 명곡’에서 부른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그녀가 원래 록 음악 가수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개취.

 

 

박기영 '넬라 판타지아' - KBS 불후의 명곡, 2016

 

아카데미가 아카데미하는 바람에...

 

미션의 성공 이후 그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과 손잡고 언터쳐블(The Untouchables, 1987)의 주제곡으로 또 한 번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만 수상은 실패한다. 시대를 관통하며 천국의 나날들(1978), 미션(1986), 언터처블(1987), 벅시(1991), 말레나(2000)로 5번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수상 한 적이 없다. 그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시네마 천국’은 외국어 영화로 취급받아 아예 음악상 후보에 오르지도 못했다. 2007년 79회 아카데미에서는 그의 영화계에 대한 헌신과 음악적 업적을 기려 공로상을 추대하였다.

 

 

시네마천국 (Cinema Paradiso, 1990)

 

말레나 (Malena, 2000)

 

그의 나이 아흔살에 가까웠던 2016년 88회 아카데미 시상식. 드디어 그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더 헤이트풀 에이트(The Hateful 8)’으로 '아카데미 최고령 수상자'가 되었다. 생애 여섯 번째 노미네이트 이자 그가 운명하기 겨우 4년 전이다. 모리꼬네는  앞서 2012년 '장고 : 분노의 추적자'에서 타란티노 감독과 작업을 했었다. 모리꼬네는 그의 음악 사용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에 불만을 느껴 "그와 다시는 작업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고 만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헤이트풀 8'의 음악 감독으로 반드시 그가 필요했기에 굴하지 않았다. 직접 설득하기보다는 모리꼬네가 극진히 사랑한 아내 마리아를 통해 설득하는 영리한(?) 방법으로 결국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헤이트풀 에이트 (The Hateful 8, 2015),  주의. 밤에 혼자 들으면 무섭다.

 

요즘 영화음악은 멜로디 보다는 장면의 분위기에 맞는 질감에 집중한다. 물론 시대의 흐름이라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음악'의 관점에서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품은 장면에 완전히 녹아드는 배경 요소라기보다는 영화의 또 다른 향기이자 맛이며 촉감이다. 멜로디가 영화 내내 흐르며 장면의 여백을 채우고, 관객을 서사의 중심으로 안내한다. 때문에 그의 음악은 음악 자체로 완벽하다. 그의 음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을 받는다. 어떤 문화적 배경과 경험도 초월하는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명곡들은 꼭 한번 ‘모아 듣기 정주행’을 권한다.

 

 

 

영상의 도움 없이도 영화 음악이 그 자체의 두 발 스스로 서 있을 수 있어야 한다

-  故 엔니오 모리꼬네

 

 

TMI

 

TMI 01. 시네마 천국 OST 대표곡 ‘러브 테마’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곡이 아니다.

 

엔니오 모리꼬네 하면 빠질 수 없는 시네마 천국 OST. 그런데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러브 테마’는 모리꼬네의 곡이 아니다. 함께 참여한 그의 아들 안드레아 모리꼬네(Andrea Morricone)의 작품이다. 부전자전, 청출어람이다.

 

시네마천국 러브테마 (Love Theme / Andrea Morricone - Cinema Paradiso, 1990)

 

TMI 02. 모리꼬네는 피파 월드컵 주제곡을 작곡했다.

 

1978년 아르렌티나 월드컵 공식 주제곡이 그의 작품이다. 70년대 특유의 예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편곡이다.

 

 

TMI 03. 우리나라 광고의 BGM으로 사용된 곡이 여럿 있다

 

1991년 대림수산 맛살 광고의 배경 음악에 사용된 선명하고 맑은 멜로디는 영화 프로페셔널(Le Professionel,  1981)의 삽입 곡 'Chi Mai'이다.

 

2002년 맥심 카푸치노 광고. 이나영의 달콤한 한 모금의 순간에 나오는 상큼한 음악, 바로 스파게티 웨스턴 무비의 명작 중 하나인 '무숙자(My Name Is Nobody, 1973)'의 메인 테마 곡이다. 

 

TMI 04. 시간 날때, 시간이 필요할 때 들으면 좋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품들

 

러브 어페어 테마(Love Affair, 1994)

 

피아니스트의 전설 OST(Playing Love - The Legend of 1900, 2000)

 

안드레아 보첼리, 아리아나 그란데의 데보라의 테마 이탈리아어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