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nH 결정적 장면

[DenH의 추천 영화] 싱숭생숭한 마음, ‘가을 타다’가 영화가 된다면?! <만추>

DenH 2022. 10. 9. 19:54

[줄거리]

 

수인번호 2537번 애나(탕웨이 분). 7년 째 수감 중인 그에게 어머니의 부고가 전해지고, 이에 3일 간의 휴가가 허락된다. 시애틀 행 버스를 타고 장례식을 가던 중, 누군가에게 쫓기듯 차에 탄 훈(현빈 분)이 차비를 빌린다. 그는 사랑이 필요한 여자들에게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고, 그 업으로 인해 도망치는 중이다.

 

“나랑 만나서 즐겁지 않은 손님은 처음이니까, 할인해 줄게요. 오늘 하루.” 훈은 돈을 갚고 찾아가겠다며 억지로 시계를 채워주지만 애나는 무뚝뚝하게 돌아선다.

 

한편 7년 만에 만난 가족도 시애틀의 거리도, 자기만 빼 놓고 모든 것이 변해 버린 것 같아 낯설기만 한 애나. 감정 없이 돌아가려 발길을 돌린 터미널에서 훈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장난처럼 시작된 둘의 하루. 시애틀을 잘 아는 척 안내하는 훈과 함께, 애나는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2537번, 지금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름도 몰랐던 애나와 훈. 호기심이던 훈의 눈빛이 진지해지고 표정 없던 애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를 때쯤, 누군가 훈을 찾아오고 애나가 돌아가야 할 시간도 다가오는데...

 

 

‘가을을 타다’는 말은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지면서 느껴지는 공허함과 쓸쓸함, 고독감을 표현하는 말이다. 요즘 같이 기온이 10도씨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대표적인 계절성 우울증의 일종. 아주 보편적인 증상인 탓에 많은 영화들이 이 계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겼던 바 있다.

 

그 중에서도 바로 이 영화 <만추>(감독 김태용)는 ‘가을을 타다’라는 말에 꼭 어울리는 영화인데, 서사의 배경 계절이 가을인 탓도 있지만, 주인공 애나가 긴 수감 생활 중에 오랜만에 바깥 세상을 마주했을 때 차갑고 서늘하게 변해버린 현실이 꼭 가을의 온도를 닮았기 때문이고, 여기서 고독함과 쓸쓸함을 느끼는 그녀의 감정이 꼭 ‘가을을 타는 것’과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가을은 '말못할 사연'과도 같은 말이기에, 영화 속 애나와 훈이 살아온 삶의 역사는 참으로 기구하다. 애나는 7년 전 새로운 사랑을 위해 남편을 살해하였지만 그는 지금 다른 여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고,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은 죽은 부모님의 재산에만 눈이 멀어 있다. 교도소의 차가운 방바닥을 잠깐 떠나 돌아온 집은 더 높은 고립감 안에 그녀를 가둘 뿐이다. 또한 맥락상 여자들에게 웃음을 팔며 살아가는 듯 보이는 훈은 자신의 고객이었던 여인의 남편에게 죽임을 협박 받으며 쫓기고 있다.

 

 

미래라고는 없어 보이는, 그렇다고 현재도 그리 살만큼 아름답지 않는 두 인물의 지극한 고독의 감정선은 눈빛으로 공명하면서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도 큰 울림으로 가닿는다. 그 울림에 많은 대사가 필요하지는 않다. 단지 비가 그친 거리를 통과하면서 식당으로, 놀이동산으로, 쇼핑몰로 어슬렁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주 조금씩 쓸쓸한 표정에 조금씩 미소가 지어져 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생전 행복이라고는 없었을 것 같았던 이들의 짧은 위로와 행복이 영원하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 너무나 슬프게도 허락된 시간은 단지 딱 하루일 뿐이다.

 

시간이 한정적인 러브스토리는 보통 비극으로 여겨지지만, <만추>에서는 그리 비극감이 크지는 않다. 물론 이들의 상황에 대한 불안감은 배경에 남아 있지만, 이 하루의 추억이 훈과 애나의 무채색 감정에 찬란한 빛깔을 더해주었기에 ‘하루만 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만이 관객들에게 남는다.

 

그래서 아직 <만추>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매 가을마다 다시 찾아보게 되는 이유는 이들의 특별한 애정이 너무도 짧았기 때문에 다시금 돌려보면서 그 행복감을 영속적으로 이어주고 싶은 우리네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감정을 심화하는 데는 현빈, 탕웨이의 역량이 크게 작동한다. 특히 즐거움이 타임오버 된 후 훈은 애나에게 키스를 남기며 “당신이 나오는 날 여기서 다시 만나요”라는 약속을 한다. 약속을 전하는 현빈의 미묘한 결의의 찬 표정, 그리고 엔딩 시퀀스에서 훈을 기다리며 슬며시 미소 짓는 탕웨이의 설렘 가득한 미소가 압권인데 이 약속이 이루어 졌는지는 명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연기가 전하는 감정선 만으로도 관객들은 심상 깊은 곳에 거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꽤 오랜 시간 즐거움을 그려내게 될 것이다.

 

 

[결정적 장면]

 

 

애나 : “내일 감옥으로 돌아가야 해요. 어머니 장례식만 마치면”

훈 : “... 하오”

애나 : “?”

훈 : “내가 아는 유일한 중국어예요. ‘좋지 않다’는 말 맞죠?”

애나 : “‘좋다’라는 뜻이에요”

훈 : “그럼 ‘좋지 않다’는 뭐라고 해요?”

애나 : “화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애나와 훈, 즐거움이 길어지자 애나는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훈은 ‘하오’ ‘화이’ 두 마디로 그녀의 말을 맞장구 쳐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지만 애나의 말이 독백이 아닌 대화가 되게끔, 고독함이 아닌 위로를 느낄 수 있게끔하는 훈의 맞장구는,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의 교통이 아니라 감정의 교통임을 깨닫게 한다.

 

작품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