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추천작

로마 ROMA, 시대의 격랑을 가슴으로 쓴 사진첩

필더무비 2022. 7. 10. 22:53

알폰소 쿠아론, 영화를 다시 쓰다

 

  • 제목 : 로마(ROMA)
  • 개봉 연도 / 관람등급 : 2018 / 15세 관람가
  • 국가 : 멕시코
  • 장르 : 드라마
  • 감독 : 알폰소 쿠아론
  • 출연 : 알리차 아파라시오(클레오), 마리나 데 타바라(소피아)

 

 

스포일러 없는 내 멋대로 추천 작은?

예술성, 장르, 스케일, 배우, 감독, 예술성, 국적 불문 아주 개인적 취향으로 고른 ‘꿀잼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취향과 맞지 않으시는 분들께는 미리 죄송합니다.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영화 내용은 최대한 자제합니다.

 

 

ⓒ IMDb

 

감히 평가할 수 없다. 존경할 뿐. 
★★★★★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랜만에 돌아온 내 멋대로 추천작 영화 <로마 ROMA, 2018>는 <그래비티>, <칠드런 오브 맨>,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등 예술성과 심미성을 모두 놓치지 않으면서도 블록버스터급 연출을 해내는 마성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작품입니다. 넷플릭스 영화로 만들어져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감독상, 그리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감독상, 촬영상 3관왕을 수상한 예술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로마(Roma)는 이탈리아의 로마(Rome)가 아니고 멕시코의 지명입니다.

 

(좌측 부터) 알폰소 쿠아론 감독, 알리차 아파라시오, 마리나 데 타바라 ⓒ IMDb

 

놀라운 사실 하나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클레오 역의 알리차 아파리시오는 연기라고는 해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는 그냥 시골에서 선생님을 준비하던 일반인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원주민 출신인 그녀는 알폰소 쿠아론이 누군지도, 넷플릭스가 뭔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연기는 정말 놀랍습니다. 영화 속 감정선에 따라 낯빛이 달라지며 심지어는 중 후반부 얼굴이 일그러져 보일 정도로 심적 고통을 참아내는 그녀의 표정 연기를 보면, 왜 무명의 일반인인 그녀를 무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려놓았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또 한 가지 동료 하녀역을 매끄럽게 연기 한 낸시 가르시아도 일반인이며 그녀의 진짜 친구라고 합니다.

 

ⓒ IMDb

 

예술 영화는 흔히 지루합니다. 아무리 영화를 사랑해도 지루하죠. 평론가가 영상美니 음악이니 칭찬을 늘어놓아도, 극적인 연출과 구조적 이야기 없이 감독의 작가주의적 관점에 심취한 영화들은 끝까지 보기 힘듭니다. 무언가 취향이나 공감대가 운 좋게 맞아 훅 빠져들 포인트가 없거나 담긴 이야기의 이면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말 잠 오기 딱 좋습니다. 수많은 해외 영화제 수상에 빛나는 배용균 감독의 명작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은 세 번 도전했으나 아직도 엔딩을 모릅니다.

 

이 영화 역시 오프닝부터 대놓고 나 예술 영화야라고 선언하듯 한참을 고정된 구정물 씬으로 시작됩니다. 정말 바닥에 구정물이 계속 밀려옵니다. 그런데 저를 훅 끌어당기는 이 아름다움은 뭘까요. 그렇습니다. 촬영상 아무나 받는 게 아닙니다. 이 영화는 이 심미적인 가치 하나만으로도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이 나옵니다. 마치 한 장면 한 장면이 사진작가의 작품같이 완벽한 구도와 부드러운 흑백 계조는 창백하고 나른합니다. 어떤 것도 윤기가 나거나 반짝 거리는 것이 없습니다. 이 메마른 흑백 화면은 아이러니하게도 극한의 리얼리즘을 보여줍니다. 

 

 

 

한 방울의 눈물

이 영화는 1970년대, 멕시코의 불안정한 사회가 그 배경입니다. 제3세계 군부독재에 대한 시위, 저항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멕시코의 한 중산층이 가정 내의 불화와 아픈 인간사를 어떻게 겪어 나가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은 배경 일 뿐 안주인 소피아(마리아 데 타바라)와 그녀의 하녀 클레오(알리차 아파라시오)의 시선을 따라 시간순으로 사건이 이어질 뿐입니다.   

 

클레오. 사랑이 넘치고 착한 사람 ⓒ IMDb

 

가장의 직업이 대형 병원 의사인 이 중산층 가정은 아름답고 학식도 높은 안주인 소피아와 네 명의 귀여운 자녀가 있습니다. 하녀 클레오와 동료까지 총 두 명의 하녀를 둘 만큼 부유한 집입니다. 영화 초반, 아버지는 마치 황제처럼 가족의 마중을 받으며 귀가를 하지만 좁디좁은 주차장에 백미러를 부딪혀 주차를 버벅거리거나 타이어로 개똥을 밟는 등 뭔가 서툴고 촌스러움을 보여줍니다. 클레오는 정말 한시도 쉴 틈 없이 집안 청소와 수발을 들지만, 딱히 깔끔하지도, 일을 잘하지도 못합니다. 집은 아이들 장난감으로 여전히 너저분하며 싱크대는 음식물 찌꺼기 청소를 안 했는지 물도 잘 안 내려갑니다. 심지어는 개똥도 잘 안 치워 주인에게 핀잔을 듣습니다. 

 

소피아.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 ⓒ IMDb

 

하지만 아이들과는 엄마 이상으로 가까우며 아이들도 진심으로 그녀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안주인 소피아는 그냥 부잣집 마나님처럼 자기의 누릴 권력대로 그녀를 대하는 듯합니다. 딱히 다정함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개구쟁이고 서로 툭하면 싸웁니다. 잠시 였지만 같이 앉아 TV를 보는 등, 클레오와 가족들은 오랜기간 함께한 단지 고용인 이상의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이들은 어떤 시대적 사명도, 운명도 보이지 않는 그저 딱히 뭣도 아닌 그냥 생활인들입니다. 

 

갑질과 굴종, 그리고 애정이 반반 섞인 소피아와 클레오의 관계. 앞으로 이 두 여인에게는 각자의 삶에서 견디기 힘든 시련이 닥칩니다. 세상 순수하고 착한 클레오의 삶을 짓밟는 한 남자가 나타나고, 부유한 주부로 살아온 소피아를 강한 엄마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사건이 터집니다. 그러나 이 두 여인은 오직 각자의 삶을 각자의 모습으로 굳세게 다시 일으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끌어안으며 가정과 삶을 지켜나갑니다.

 

ⓒ IMDb

 

이영화의 연출은 처음엔 다소 답답하고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장면에서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동선과 각자의 소리를 냅니다. 관객을 위해 효과음, 사운드를 조절하거나 주인공의 대사를 부각하지 않습니다. 영화 내내 온갖 소음과 사람들의 수군거림, 잡음이 뒤섞이며 축축한 물기, 먼지가 풀풀 피어오릅니다. 딱 내 귀에 들리는 일상의 소란함과 환경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죠. 카메라는 멀찍이 떨어져 있거나 주인공들의 주변에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대부분의 장면이 사람의 시야와 거의 유사한 화각과 눈높이로 촬영되었습니다. 카메라 무빙은 단 한차례의 줌인이나 줌아웃도 없이 오직 수평과 수직으로만 움직입니다.

 

ⓒ IMDb

 

때문에 내가 그들 옆에 서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보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화면 이동 속도도 일정해 로봇이 찍은 것 같습니다. 그 바람에 화면 구석 구석 디테일이 다 보이며 공간의 깊이와 규모가 너무도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관객들은 그냥  딱 카메라의 거리에서 그들과 같이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얼핏 혼란스럽고 난장판처럼 보이지만, 한 번 장면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그 사실감이 주는 몰입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그 순간 이입되는 감정이 주는 통증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특히 클레오의 출산 장면과 마지막 바다 씬은  말을 잇기 힘듭니다. 여러분이 이 장면에서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신다면 몹시 뜨거울 것입니다.

 

 

영화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다

남성과 여성, 백인 지배층과 원주민 사이, 성과 계급의 차별이 당연시되고 폭력이 만연한 야만의 시대를 구구절절 설명 없이 담담히 담아내 더 마음이 아파옵니다. 언제나 시대는 약자에서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해 왔습니다. 구조적으로, 관습적으로, 언제나 죽거나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습니다. 티도 나지 않는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만 최소한의 이의제기도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혼자 쓴 일기 같은 영화입니다.

 

ⓒ IMDb


미지막에 '리보를 위하여'라는 헌사를 바치는 이 영화는 알폰소 쿠아론의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준 리보리아 로드리게즈라는 보모와 어머니의 헌신을 떠올리며 만든 이야기로, 자전적 성격이 강한 영화입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그를 버리고 떠나 버린 후 고용되어 그를 키워준 그녀는 쿠아론을 영화관에 자주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도 그가 <그라비티>에 영감을 받았다고 했던 우주영화 장면이 나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 IMDb

 

알폰소 쿠아론의 연출이 소름 돋는 것은 대놓고 설정을 만들고, 극적으로 앞뒤를 바꿔가며 현란한 구조적 스토리 텔링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심지어는 컬러조차 다 빼버렸습니다. 그저 일정한 시간의 구간을 덤덤히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녀들에 대한 과도한 자의적 해석이나 캐릭터 설정을 하기보다는 그저 그때 그 시절 거기 꼭 살았었을 법한 사람의 이야기로 담담히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이는 그의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 영화는 오랜만에 저에게 '영화란 무엇이었지?'를 다시금 생각게 합니다.

 

 

 

ⓒ IMDb

 

장르, 스타일, 스토리 텔링 기법, 사운드와 음악, SFX 테크놀로지에 의존하고 치중한 영화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 그 모든 것의 원류, 즉 오직 영화 본연의 시선을 저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모든 허례와 허식을 비우고 오직 영화라는 행위, 그 자체만을 가득 채운 거장의 작품에 경외감마저 느낍니다. 만일 쿠아론이 나의 친구였다면, 그의 집에서 맥주 한잔 하며 흑백 사진 첩을 펴 놓고 아련한 그 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영화. <로마>였습니다. 로마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PS. 주의!!

15세 관람가라고 하지만. 영화속에서는 성기가 완전히 노출된 남성(클레오의 남자 친구)의 전라 씬이 나옵니다. 그녀가 여유시간에 외출하고 남자를 만나는 다음 장면에 갑자기 등장하니 자녀와 시청시 주의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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