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영화

'한 여름 밤'을 극복 못한, 겟 오버 잇 Get Over It,

필더무비 2021. 8. 11. 17:16

출처 : IMDb

 

 

참신한 오프닝, 그렇지 못한 전개

영화 시작부터 남자 주인공 버크는 여자 친구 앨리슨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습니다. 권태감을 느껴서라고.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 소울 메이트인 줄 알았는데 개뿔! 낙심한 버크는 여자 친구가 살뜰하게 챙겨둔 자기 물건이 든 박스를 들고 털레 털레 그녀의 집을 떠납니다.

 

1 분 전여친이 된 그녀의 집 가라지(Garage)로 부터 진짜 가라지 밴드(Garage Band)들이 걸어 나오며 갑분 뮤지컬 분위기로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가 시작됩니다. 오! 신박하다. 이 영화가 무려 20년 전 영화라니! 노래도 레트로 느낌 팍팍 나는 록 뮤지컬 스타입니다. 실연을 당한 그를 약 올리듯 행복한 군무는 대조를 이룹니다. 이 영화가 만만찮은 로맨틱 코미디가 될 것 같은 기대감이 팍팍 듭니다. 그런데… 딱, 거기 까지였습니다.

 

 

Love Will Keep Us Together 2001 Get over it

 

롱 테이크로 찍은 뮤직 비디오 스타일 오프닝 시퀀스는 '라라랜드(La La Land, 2016)'의 첫 도입부나 한 때 유행했던 감동적인 청혼 이벤트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혹평을 받지만 이 장면만큼은 호평일색입니다. 이 장면 뒤로 영화의 본 스토리는 과장된 연기, 과장된 연출, 어설픈 CG로 퀄리티 저하를 자초하죠. B급 감성도 아닙니다. 그냥 유치해요. 이건 순전히 감독의 과욕이라 봅니다. 오프닝의 저런 감각을 가지고도 연출 욕심이 지나쳐 영화를 망친 감독이 안타까울 뿐이네요.

 

 

La La Land (2016) - Another Day of Sun Scene (1/11) | Movieclips

 

Isaac's Live Lip-Dub Proposal

 

 

 

 

방황하는 청춘의 상처 극복기

십 대 반인반수(半人半獸 : 반은 사람, 반은 짐승) 남자가 실연하면 무엇을 할까요? 미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선 반드시 나오는 장면이 있답니다. 친구의 부추김에 못 이겨 클럽을 가서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것이죠. 마치 '상처 받은 자의 방탕한 하룻밤' 라이선스를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거기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 원래 여자 친구가 돌아오게 되고, 거기서 만난 여자와 잘 안되면 남자가 여자에게로 돌아가죠. 대충 이 두 가집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는 것은 클리셰이자 사실일까요?

 

 

출처 : cinema-fanatic.com

 

주인공은 클럽에서 ①전 여자 친구, ②전 여자 친구의 절친을 만납니다. 그리고 ③자기 절친의 여동생, ④절친 여동생의 절친을 모두 마주치는데 아무래도 감독이 거기 다 모이라고 한 것 같군요.

 

 

Get Over It | 'Lucky' (HD) - Ben Foster, Mila Kunis, Zoe Saldana | MIRAMAX

 

①전 여자 친구는 멜리사 세이지밀러(Melissa Sagemiller)가 맡았는데 이 영화 이후 큰 히트작이 없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배우는 아닙니다. ②전 여자 친구의 절친 역에는 세상에나 아바타의 주인공이자 마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가모라역을 맡았던 조이 살다나(Zoe Saldana)입니다. ③자기 절친의 여동생 '켈리' 역은 무려 커스틴 던스트(Kirsten Dunst)이고 ④절친 여동생의 절친역에는 코미디 영화의 여왕 밀라 쿠니스(Mila Kunis)입니다. 20년 전 풋풋한 그녀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뭐, 그냥 그랬다구요.

 

 

출처 : gfycat.com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가 누구와 갈등을 일으키는지는 자세히 말할 필요 없이 어차피 개연성은 없습니다. 여전히 전 여자 친구를 잊지 못하고 집착하는데 잘난 남자와 금세 연애를 시작한 그녀 때문에 미칠 것 같습니다. 남자 주인공의 바보짓을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이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출처 : vaguevisages.com

 

주인공은 전 여자 친구가 학교에서 연극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다시 되돌리기 위해 연극부에 지원합니다. 당연히 주변 인물들도 죄다 연극을 하게 됩니다. 오빠의 절친인 남자 중인공을 짝사랑하는 켈리는 사랑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 주인공을 도와주는데, 그들의 엇갈리는 사랑의 작대기는 연극의 내용과 묘하게 겹치며 나름 참신한 설정이 이어집니다.

 

 

출처 : IMDb

 

 

섀익스피어라니!

처음에는 이 영화가 단지 일찍 이성에 눈을 뜨는 서양 청소년들의 알콩달콩 로맨틱 코미디 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영화는 무려 윌리엄 섀익스피어의 대표적 희곡 ‘한여름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을 차용한 영화였습니다. 요정의 왕이 실수로 엉뚱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게 만들었다 한바탕 소동이 난 뒤 결국 문제를 바로 잡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내용입니다. 틴에이저 무비와 위대한 대 문호 섀익스피어의 만남이라니!

 

 

이양반.. 참.. 출처 : IMDb

 

그런데 문제는 연출입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전혀 쓸데없는 유치한 CG는 관람 연령대를 아무리 낮춰도 용납이 안되네요. 게다가 주요 역할인 연극 선생님의 과도한 콘셉트 연기는 영화의 몰입을 지나치게 방해합니다. 한 장면 한 장면만 똑 떼놓고 보면 풋! 하고 웃음이 터지지만 도무지 안 맞는 직소 퍼즐처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이 안돼요. 이런데 신경 쓸 시간에 스토리와 대사를 더 다듬었어야 합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과한 욕심이 불러온 화근입니다.

 

 

 

커스틴은 못 참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시선을 앗아가는 역할은 단연 커스틴 던스트입니다. 게슴츠레한 눈매에 눈부신 푸른 눈동자는 어여쁘기 짝이 없어요. 주인공을 향해 순수한 짝사랑을 하는 소녀의 모습을 잘 표현해 냈습니다. 덕분에 상대역 벤 포스터의 역할이 그나마 중심을 잡아갑니다.

 

Dream of Me.  2001 Get over it

 

원작에서 처럼 영화 속 연극에서 그녀가 사랑의 묘약에 눈을 떠 세레나데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완성도가 높은 순간입니다. 커스틴 던스트와, 그녀의 노래, 두 주인공의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습니다. 감독, 잘할 수 있었잖아!! 이 장면에 대한 한 유튜브 댓글입니다.

 

" 이 영화는 이 장면을 빼고는 모조리 멍청하다. 이 노래만큼은 아름답고, 여전히 내 맘을 울린다"

백퍼 공감입니다. 사람 마음 똑같네요.

 

 

출처 : IMDb

 

주인공 주변에는 여러 친구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캘리의 오빠이자 남자 주인공의 절친 빼고는 거의 의미 없는 에피소드 담당이며 에피소드 조차 있어도, 없어도 그만입니다. 위대한 섀익스피어의 희곡을 과감히 틴에이저 무비에 호기롭게 녹여낸 감독의 시도는 높이 사지만, 10대 영화에 어설픈 미국식 화장실 코미디(음담패설 성인 코미디) 스타일까지 버무린 무리수는 안타깝습니다. 화장실조차도 가다만 것 같아요. 코미디 영화 '굿 럭 척(good luck chuck, 2007)'처럼 화장실을 가려면 제대로 갔어야 합니다.

 

 

 

서툴지만 그 시절 영화의 정감

그래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하이틴 영화라는 면에선 괜찮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의 엉망은 아니니까요.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음악들은 들어줄만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시절을 추억하거나 이런 취향이신 분들에 한해서죠. 필자는 이 영화 삽입곡을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처음 듣고, 해외 직구로 OST CD를 구매해서 듣고, 나중에서야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국내 개봉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들는 이 영화의 삽입곡은 바로 "I’ll Naver Fall in Love Again"였습니다.

 

 

I'll Nver Fall in Love Again  2001 Get over it

 

미국에선 워낙 유명한 노래라 수많은 버전의 리메이크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히트한 것은 1970년 디온 워윅이 부른 버전이죠. 대부분 그녀가 최초 버전으로 알고 있지만 원곡은 훨씬 전에 뮤지컬 연극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예스러운 편곡에 푸근하고 따뜻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시대를 초월한 감성을 느낍니다. 물론 개인 취향.

 

 

I'll Nver Fall in Love Again. 1970 Dionne Warwick

 

 

출처 : IMDb

 

역시나 버크의 전 여자 친구 앨리슨이 새로 사귄 놈은 재수탱이입니다. 역시나 앨리슨은 버크에게 다시 돌아오지만 거절당하며, 역시나 순수한 켈리는 버크를 차지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몇 안 되는 해피엔딩 작품 ‘한 여름밤의 꿈’처럼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판타지 적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최종적으로 망하게 된 듯합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정공법도, 판타지도, 화장실 코미디도, 화려한 뮤지컬도 아닌 잡탕밥이 되어 버렸네요.

 

 

이렇게 시작해서.. 출처 : IMDb
이렇게 끝납니다.. 출처 : IMDb

 

노래는 들어 줄만 하나 분량이 너무 적고. 웃기기는 하는데 사건만 터지고 그 사건이 인물의 성격이나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합니다. 화장실 코미디 스타일을 가미했지만 볼일을 보다 만 느낌입니다. 로맨틱 코미디 라기에는 인물들의 사랑스러움에 몰입될 장면들이 없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섀익스피어가 보여준 상상력의 반만 따라갔어도 괜찮았을 이 영화. 3곡의 노래가 아까워 소개하는 음악이 있는 영화 이야기 ‘겟 오버 잇’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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