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nH의 추천 영화] 내 사랑에 끝이 보일 때 보면 좋은 영화 <행복>
[줄거리]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던 남자 영수(황정민). 운영하던 클럽은 망하고 애인 수연(공효진)과는 이별,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간경변까지 앓게 되며 돈과 사랑, 건강까지 모두 잃은 시골 요양원 ‘희망의 집’으로 내려간다.
이 ‘희망의 집’엔 중증 폐질환 환자지만, 밝은 성격을 지닌 여자 은희(임수정)가 8년째 머물고 있다. 지루한 시골 요양원, 미래가 있는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영수와 은희는 서로에게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보통의 커플들처럼 행복한 연애를 시작한다. 두 사람은 요양원을 나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1년 뒤.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의 마무리처럼 살아갈 것처럼 보였던 은희와 영수의 사이도 점점 틀어지기 시작한다. 은희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은 영수는 자유분방한 예전 삶을 그리워하며 지금 일상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병약한 은희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가운데, 때마침 서울에서 수연이 찾아오는데…….
<행복>은 아직도 많은 시네필에게 찬사를 받고 있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외출> 등 90년대 ~ 00년대를 관통하는 멜로 거장 허진호 감독의 작품이다. 멜로 영화는 그 감정의 뿌리를 ‘아픔’ ‘슬픔’에 두고 있는데, 허진호 감독은 이 감정 뿌리를 담담한 필체로 소구하며 관객들을 울린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선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끝이 나버린 미완성 사랑의 안타까움을, <봄날은 간다>에선 사랑의 질곡으로 성숙해 가는 청년의 면모를, <외출>에서는 결혼 생활에서 각자 아픔을 겪었던 남녀가 쓸쓸하게 서로를 위로하는 감정선을 표현한 바 있다. 자극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일상적인 감정으로써 사랑의 필요성을 역설해 온 것이다.
<행복>에서는 앞선 작품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안타까움, 성숙, 위로 등 숭고하게 여겨지는 사랑의 특성을 조금은 덜어내고, 도리어 너무도 통속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의 면모를 그리면서 더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시도를 한 것.
이때 인물의 시선을 명쾌하게 잡아내는 ‘소박한’ 카메라 워크가 인상적인데, 영수와 은희가 사랑을 키워나가는 전반부엔 두 인물의 시선은 늘 동일한 곳을 바라본다거나 서로 애정을 담아 바라보는데, 카메라는 이를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포착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들의 감정이 어긋나듯 시선도 어긋나기 시작하는데, 이때 카메라는 정적으로 이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과거 연인과 연애를 하면서 이별을 직감할 때 상대의 시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떠올리며 이 영화를 감상한다면, 이 카메라 움직임에 극적인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정적 장면]
영수와 나들이를 떠난 은희. 신나게 놀이기구를 타면서 웃고 있는 영수를 바라보며 웃던 은희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자꾸 어긋나는 시선에서 슬픈 예감을 느꼈던 건 아닐까?
이후 영수는 술에 취해 “네가 날 떠나주면 안 되냐”며 모질게 끝을 선언하고, 은희는 “내가 그 여자보다 더 잘해줄게..”라며 너무도 간절하게 끝이 나버린 행복을 붙잡고자 애원한다. 이 장면은 모든 사랑을 하는, 사랑을 해보았던 사람들에게 ‘왜 사랑은 언젠가 끝나야만 하는가?’라는 철학적인 물음에 대해 고민을 요청하는 듯하다.
작품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